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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푸틴은 바보”…개전 초기 러시아 병사들의 ‘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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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지난 8월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군수기술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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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전쟁은 우리 정부가 저지른 가장 멍청한 짓이에요.”(세르게이)

“푸틴은 바보야. 푸틴은 키이우를 원하지만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알렉산드르)

“우리는 애들처럼 속았어.”(니키타)

뉴욕타임스(NYT)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당국이 개전 초기인 지난 3월 러시아 병사들의 전화통화를 감청한 기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단시일 안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장악하고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강한 저항에 밀려 부차와 이르핀 등 키이우 외곽 마을을 점령하는 데 그쳤다.


☞ ‘Putin Is a Fool’: Intercepted Calls Reveal Russian Army in Disarray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2/09/28/world/europe/russian-soldiers-phone-calls-ukraine.html


3월에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러시아 병사들은 규정을 어기고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전장의 열악한 상황과 고충을 털어놨다. 이들의 육성을 통해 드러난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 장비 부족, 방만한 군기, 약탈과 범죄 행위 등은 결과적으로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패퇴한 원인이 됐다고 NYT는 전했다.

전황은 러시아가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았다. 알렉산드르라는 이름의 병사는 “우리는 키이우를 장악하지 못하고 고작해야 마을 몇 개를 점령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병사는 “탱크와 장갑차가 불타고 있고 우크라이나군이 다리와 댐을 폭파시켜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병사가 “일부 병사들이 우크라이나군 시체에서 군복을 벗긴 다음 자기가 입고 다니는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복이라 우리 것보다 좋다”고 말하는 내용도 나온다.

3월 중순쯤 러시아는 이미 상당한 병력 손실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니키타라는 이름의 병사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우리 연대 병력의 60%가 죽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는 “공수부대 400명 중에서 38명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한 병사의 아내는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러시아군 병사들의) 관이 계속 도착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날마다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건 악몽”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부차 등에서 저질러진 학살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지만 병사들의 대화가 전하는 진실은 러시아 정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르게이는 연인에게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감금하고 옷을 벗긴 뒤에 옷을 뒤졌다”면서 “그들을 보내주면 우리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서 숲으로 끌고 가서 총살하기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왜 포로로 삼지 않고 죽였느냐’는 연인의 질문에 세르게이는 “포로로 삼으면 먹여야 하는데 식량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약탈은 일상이었다.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민가를 숙소로 사용하면서 현금은 물론 가전제품과 옷까지 약탈했다. 한 병사는 “금고를 열었더니 520만루블(약 1억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세르게이는 연인에게 “어떤 TV를 원해? LG 아니면 삼성?”이라고 물었다.

3월 말 러시아군이 키이우주에서 후퇴하면서 병사들의 좌절감은 깊어졌다. 안드레이라는 이름의 병사는 아내에게 “분위기가 정말 엉망”이라면서 “한 명은 질질 울고 다른 녀석은 자살하려고 한다. 다 짜증난다”고 말했다. 지휘관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병사들에게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며 위협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이유와 관련해 우크라이나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병사는 어머니와 통화에서 “이곳에 파시스트라고는 없다. 이 전쟁은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됐다”면서 “누구도 이 전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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