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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끝까지판다] 30년간 딸 찾았는데…'은폐' 뭉개는 황당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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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 90년대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이춘재가 2019년 범행을 자백한 뒤, 피해자 가운데 8살 초등학생이던 김현정 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SBS 끝까지판다 팀은 당시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김양의 시신과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을 보도해드렸는데, 저희가 계속 소송 과정을 취재하며 입수한 정부 의견서를 보면 당국은 책임을 인정하기는 커녕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권지윤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이 입수한 이춘재 수사 기록을 보면 33년 전 현정 양 실종 다섯 달 만에 인근 야산에서 시신 일부와 옷 등 유류품이 발견됩니다.

수색에 참여했던 주민은 "줄넘기에 묶인 양손 뼈를 발견했다"고 증언했고, 당시 경찰 10명 이상이 시신 발견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됐습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 (2021년 5월 3일 SBS8뉴스) : 시신 발견된 건 그냥 묻어버리고 그 상태에서 실종사건으로 수사하는 걸로 그렇게 진행이 된 거죠.]

3년 전 이춘재가 자백하기 전까지 경찰이 이 사실을 은폐하는 바람에 유족들은 30년 간 딸을 찾아 다닌 겁니다.

경찰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상당하다"며 당시 형사계장 등 2명을 입건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사건을 종결했고, 한을 풀길 없는 유족에게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정부 측이 낸 의견서에는 황당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과학수사 기법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 경찰관들이 발견된 시신 일부를 땅속에 도로 묻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며 사건의 핵심 쟁점과 거리가 먼 논리를 폈습니다.

10명 이상이 시신 발견을 알고 있었다는 수사기록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확인된 건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조직적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범죄에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는 무기, '청구권 시효 소멸'을 주장했습니다.

[이정도 변호사(유족 측 변호인) : 신속한 권리구제를 해도 모자란 판에 국가의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 황당한 변명만 늘어놓는 건 피해자나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해서 (지양해야 합니다.)]

현정 양 어머니는 2년 전 숨졌고,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가 3년 가까이 미뤄지는 사이, 아버지도 최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 김용복 씨(현정 양 아버지)/2021년 5월 : 책임 없다는 놈들 한 번 내가 만나 보고 싶다니까. 눈으로 (딸 시신이라도) 봤으면 가슴에 묻고 내 자식 하늘나라 갔다 하고 그럴 텐데…]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은 모레 예정돼 있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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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Q. 1심 소송이 벌써 3년 가까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거죠?

[권지윤 기자 : 현정 양 유족들은 2020년 3월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사건 전말이 담긴 수사기록 제출부터 검찰의 비협조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경찰관 개인의 일탈로 몰고 가며 책임을 회피하면서 시간을 끌었는데요. 1심 선고는 5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199조가 아무리 구문에 그치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1심만 2년 8개월 가까이 진행된 건 지나치게 가혹해 보입니다. 소송이 지체되는 사이 현정 양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숨지면서 정부의 책임 인정도 못 보게 됐습니다.]

Q. 정부는 계속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죠?

[권지윤 기자 :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서 배상액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는 건데요. 현정 양 유족들은 경찰의 은폐 행위에 따른 국가 폭력 희생자이자 이춘재의 살인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 법무부가 범죄 피해자 보호를 확대한다며 인권을 보호하는 따뜻한 법무행정이라는 자료를 냈는데 이 자료가 무색해 보입니다. 1심이 끝나도 항소할 수 있어서 재판이 언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는데 끝까지 판다 팀이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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