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는 6개월 뒤 다시 점검
통신 업계선 "정부의 잘못된 주파수 정책"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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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KT와 LG유플러스에 할당한 5세대(5G) 주파수 일부를 다시 가져가기로 했다. 할당 당시 제시한 기지국 설치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인데, 정부가 통신사들에 할당했던 주파수를 회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텔레콤에는 이용 기간 6개월 단축과 함께 내년 5월 말까지 설치 조건을 다시 이행할 것을 통지했다.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5G 주파수 할당 시 부과한 할당 조건에 대한 이행 점검 절차를 마치고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할당 3년 지났지만 이통3사 모두 의무 구축의 10% 그쳐"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5G 주파수 할당 조건 이행 점검 결과 및 향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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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과기정통부는 5G 서비스용으로 이동통신 3사에 3.5기가헤르츠(㎓) 대역과 28㎓ 대역의 주파수를 할당하면서 3년 안에 각 회사별로 3.5㎓ 대역은 2만2,500개, 28㎓ 대역은 1만5,000개의 기지국을 마련하도록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실제 구축한 기지국 수가 10% 미만이거나, 평가 결과 점수가 30점 미만일 경우 할당을 취소하고 할당 대가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8년 28㎓ 대역을 할당받으면서 SK텔레콤은 2,073억 원, KT 2,078억 원, LG유플러스 2,072억 원을 정부에 각각 냈다.
주파수 대역은 쉽게 말하면 '고속도로 차로'로 보면 된다. 대역폭(차로)이 넓을수록 빠른 속도로 많은 데이터(차량)를 전송할 수 있다. 3.5㎓ 대역보다 28㎓ 대역이 ①더 빠르고 ②지연은 적고 ③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 이유다. 정부와 이통사가 5G 개통 당시 홍보한 '롱텀에볼루션(LTE) 대비 20배 빠른 5G'를 구현하기 위해선 28㎓ 대역이 있어야 한다. 반면 3.5㎓ 대역은 속도가 느린 대신 회절률(전파가 휘어지는 성질)이 좋아 상대적으로 멀리까지 전파가 갈 수 있다. 28㎓ 대역은 전파 도달 거리가 3.5㎓의 10~15%에 그칠 정도로 짧다. 결국 28㎓를 상용화하기 위해선 3.5㎓보다 기지국 사이를 좀 더 촘촘하게 해야 한다.
과기부 조사 결과 이통3사는 3.5㎓ 대역은 의무 구축 대비 300% 이상 기지국을 세운 반면 28㎓ 대역은 10% 남짓밖에 마련하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평가 결과 점수는 SKT가 30.5점, LG유플러스는 28.9점, KT는 27.3점을 받았다. 이에 LG유플러스와 KT는 할당 취소, SKT에는 이용 기간(5년)의 10%(6개월) 단축과 함께 재할당 신청 전인 내년 5월 31일까지 처음 할당 조건인 1만5,000개 기지국을 마련하지 못하면 할당을 취소하기로 했다.
최종 처분은 다음 달 청문 절차를 거쳐 확정한다. 취소가 확정되면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대역 중 1개 대역을 새 사업자가 가져갈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과기정통부는 현재 이통3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하철 28㎓ 와이파이 사업의 경우 할당 취소를 면한 SKT가 맡도록 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그동안 정부는 이동통신 3사에 할당 조건을 이행하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해 왔으나 이런 결과가 나와 유감"이라며 "신규 사업자의 투자 부담 경감과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도록 새로운 할당 방식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28㎓ 대역을 5G 서비스에 할당한 것 자체가 시기상조" 비판도
조경식(앞줄 오른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이 통신 3사, 삼성전자,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와 2월 16일 5G 28㎓ 기지국 구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을 방문해 안전사항을 점검했다. 과기정통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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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3사는 모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이번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KT는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사는 그동안 28㎓ 대역 5G 서비스를 위해 투자한 비용 전체를 날리게 됐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가상·증강현실(VR·AR), 메타버스 등 차세대 콘텐츠를 위한 통신 기반에 타격을 입게 됐다. 가까스로 취소 처분을 면한 SK텔레콤은 "정부 조치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애초 정부가 잘못된 주파수 할당 계획을 마련한 게 잘못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주파수의 특징을 고려하면 28㎓ 대역을 5G 서비스에 할당한 것 자체가 시기상조였다는 지적이다.
이통3사는 도시에 건물이 많고, 국토의 70%가 산악 지형인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하면 모든 국민에게 5G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3.5㎓ 대역이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28㎓ 대역은 산업단지 등 특정 공간에서 필요한 기업 전용(B2B) 서비스로 활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28㎓ 대역을 활용한 5G 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기업체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스마트팩토리, 로봇 등 기술 수준에서는 통신망으로 3.5㎓ 대역 5G나 LTE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이통3사는 잠실 야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코엑스, 인천국제공항이나 수도권 지하철 일부 구간에서만 시범 운영하는 데 그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도 수요가 없어 투자를 못 하고 나가떨어지는데 어떤 사업자가 28㎓ 대역을 받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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