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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취업과 일자리

유급휴일·퇴직금 사각지대…"주 5일 근무 중심의 고용안전망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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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기 근로자 170만명 시대]

인권위 권고후 고용보험만 보장

주휴수당 등 적용서 여전히 배제

"단기근로자 소외 안되게 개선하고

전일근로자 과도한 보호 조정해야"

[세종=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숙박·음식업 취업자에서 근로 시간이 짧은 근로자가 늘었고, 플랫폼을 기반으로 잠깐씩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초단기 근로자가 증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달 초단기 근로자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1일 이데일리가 통계청의 10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세부자료(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주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근로자는 169만 1000명으로 1년 전(157만 1000명)보다 12만명(7.6%)증가했다. 사상 최대였던 한 달전(179만6000명)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10월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다.

내년 경기 침체와 맞물려 고용 시장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초단기 근로자의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초단기 근로자를 포용하는 고용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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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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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음식점 취업자 3명 중 1명은 ‘초단기’

초단기 근로자는 고용 환경이 열악한 숙박·음식점업에서 가장 많이 늘어 고용의 질 악화가 우려된다. 지난달 숙박·음식점업 분야의 초단기 근로자는 19만 8000명으로 1년 전(14만 6000명)보다 5만 2000명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급격하게 줄었던 숙박·음식점업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후 일손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피크타임 중심으로 짧게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숙박 및 음식점업의 전체 취업자 증가폭이 15만 3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신규 채용 3명 중 1명은 초단기 근로 형태였던 셈이다.

고용주인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15시간 이상 근로자에게 매주 2만 7480원의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것조차 큰 부담이어서 초단기 근로자를 선호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주휴수당을 감당하기 어려워 여러 명의 종업원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에도 초단기 근로자를 채용할 수 밖에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게시물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말 알바연대가 발표한 ‘2022 알바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34.3%는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고령층에서 가장 많았다. 지난달 60세 이상 초단기 근로자는 1년 전보다 6만 1000명 늘어난 89만 6000명으로, 전체 초단기 근로자의 53.0%에 달했다. 특히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분야에만 초단기 근로자가 50만명이나 돼 전체 초단기 근로자의 29.6%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 분야는 한 달 30시간 일하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다수 포진해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단기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의 측면보단 고용의 질이 악화된 측면이 더 크다고 보는게 맞다”고 지적했다 .

‘쪼개기 고용’에 단시간 일자리 늘어

초단기 근로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이들을 포괄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알바연대 관계자는 “현재는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이 되지 않으면 주휴수당, 퇴직금 지급 등의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는데 이같은 적용, 배제 방식은 불합리하다”며 “근로시간에 비례한 차등 적용 방식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7년 초단기 근로자들에게도 주휴와 연휴, 퇴직급여와 고용보험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고용보험은 지난 2018년 7월부터 초단기 근로자의 가입도 의무화됐지만 주휴와 연휴, 퇴직급여 적용에는 여전히 배제돼 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행법상으로는 초단기 근로 일자리를 여러 개 해서 사실상으론 전일제 근로자처럼 일하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며 “현재 주 15시간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의 차등 적용은 문제가 있으며,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초단기 근로자에게도 유급휴일을 적용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국회는 검토보고를 통해 “초단기 근로자에 대해 유급휴일 등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보호의 필요성이 더 강한 대상을 배제하고 있다는 의견과 유급휴일 적용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및 인사·노무 관리의 어려움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함께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를 통한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영범 교수는 “현재는 고용 시스템의 모든 기준이 주 5일, 전일제 근무를 하는 사람에 맞춰져 있다”며 “단기 근로자들까지 포괄하는 형태로 고용안전망 제도가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고용주 입장까지 고려해 고용시장을 위축시키지 않는 지속가능한 제도가 되려면 전일제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조정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지연 KDI 부연구위원은 “초단기 근로자의 증가는 근로자들이 선호하는 노동 형태가 변화하는 측면과 고용의 질이 악화하는 측면이 양립해 있다”면서 “지금까지는 근로시간 15시간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상 제도의 적용·배제를 나눠왔지만, 초단기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민 고용보험이 소득을 기반으로 하듯 다른 고용안전망 제도도 손봐야 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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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음식점들이 밀집한 거리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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