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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세상을 바꾼 법정]⑪ 이 판결 없었으면 '촛불집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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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집회 막자 뿔난 시민들…"밤에 시위하면 왜 불법인데"

야간집회 허용되자 폭력 사라졌다…불법행위 증가 우려 불식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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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미사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22.11.14/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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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시청 앞 광장. 직장인 김모씨(30)는 촛불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시간을 거슬러 13년 전으로 돌아가면 김씨의 행동은 불법이다.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간 옥외집회가 허용된 건 2009년 9월24일. 헌법재판소(헌재)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집회와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집시법 제10조를 헌법불합치로 판결하면서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역사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촛불집회가 비폭력적이면서도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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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대심판정. 014.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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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시위하면 왜 불법인데


2008년 봄 정부가 광우병 발생 우려로 중단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결정하면서 광우병 파동이 불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공포감이 확산됐고 서울 도심에선 수입을 저지하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해가 진 오후 7시30분 무렵 경찰은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일부 시민이 집회가 아닌 문화제라며 늦은 밤까지 거리를 행진했으나 이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해 수 백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왜 밤에 시위하면 불법인데?"

법원은 2008년 10월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신청한 집시법(집회시위법) 위헌심판제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해가 진 뒤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결한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정치의 토대이자 개인의 의사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라며 "위법행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만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직장과 학교는 일과시간을 오후 5~6시로 하고 있어 평일에는 사실상 집회에 참가할 수 없다"면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 야간집회 허용…폭력이 사라졌다

이 판결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다. 학교를 마친 학생부터 퇴근한 직장인까지 누구나 늦은 밤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에 촛불문화제는 당당히 촛불집회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2011년 대학생 등록금 반값 요구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촛불집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비폭력이다. 야간집회를 허용하면 불법 행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감소했다. 야간집회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강제 해산하려는 경찰과 이에 맞서는 시민이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당시 헌재의 판단이 맞았던 것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직접 신청했던 안진걸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일각에선 야간집회가 허용되면 시민이 밤마다 폭도가 돼 서울을 휩쓸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폭력이 생기기는커녕 충돌까지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중대한 민주적 진전과 함께 평화집회가 발전한 계기"라고 이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대표적인 평화집회로 '박근혜 퇴진 집회'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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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7.2.25/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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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 집회…소음 시달리는 주민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 야간집회가 허용된 후 발생한 부작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음 문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집회 소음 관련 112민원은 2만2854건으로 월평균 2285건 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난 5월엔 월평균 4000건을 넘었다.

특히 집회가 새벽까지 계속되면 주민들의 스트레스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심야집회 소음기준을 60㏈에서 55㏈로 강화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경찰이 소음을 측정할 때만 음량을 조절하는 꼼수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주민들은 야간 집회의 소음을 견디다 못해 시설보호요청서(진정서)를 제출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이 현충일 당시 밤부터 아침까지 집회를 열자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기도 했다.

◇ '미완의 집시법' 개정해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완의 집시법'을 손봐야 한다고 제언한다.

당시 헌재는 야간집회 금지 조항을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로 판결했다. 위헌 조항은 판결 즉시 무효가 되지만 헌법불합치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국회에 대체입법의 시간을 준다. 야간집회가 무제한 허용될 경우의 부작용을 헌재도 인지했던 것이다.

장 교수는 "집회가 새벽을 포함해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건 사회통념에 어긋나지 않느냐"면서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이유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시간대를 정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집시법은 여야 대립으로 10년 넘게 개정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사이 집시법 10조는 대체입법 없이 효력을 잃었다. 결국 '24시간 시위 허용'으로 흘러간 셈이다.

장 교수는 "지금처럼 아무런 제한없이 집회가 새벽까지 계속되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에 맞지 않다"면서 "집시법을 개정해 바로 잡고 동시에 소음기준도 정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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