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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화물연대 총파업

"어떤 귀족이 밥도 못 먹고 일하나… 안전운임제 전후 노동환경 차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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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참여 화물운송기사 현장증언
"노동시간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
안전운임제 이후 졸음운전 압박 덜해"
한국일보

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집회에서 노조원들이 화물차 번호판을 목에 걸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며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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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를 옆에 태우고 유조차 운전을 합니다. 밤샘 운전으로 졸린데 깨워줄 사람이 없으니, 옆에서 파리채로 때려 깨우라고요. 새벽과 오후 시간대 화물차 운전자 중에선 눈 똑바로 뜨고 운전하는 사람이 없다고들 합니다. 화물 노동자의 삶은 결국 시민 안전과 연결돼 있습니다. 귀족이 되려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안전하자는 겁니다." (14년차 대형 유조차 기사 이금상씨)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화물 운송기사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물연대본부가 공동개최한 토론회에서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 여당의 '귀족노조', '정치파업' 프레임에 대해 비판했다.

운송 기사들은 정부의 '고소득 노동자', '이기적인 귀족노조' 낙인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주 6일,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은 화물운송사업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조차 기사 이금상씨는 "저녁 8시에 취침해 다음날 오전 1시에 일어나 운송 업무를 시작한다"며 "오전에 두 차례 기름을 싣고 시내를 오가고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또 다녀오면 이미 지칠 대로 지치지만, 업계 특성상 기름은 365일 24시간 출하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쉬지도 못하는 '극한 노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귀족인가"라고 반문했다.

화물연대 분석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 월평균 순수입은 342만8,000원으로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운행 시간이 워낙 길어 시간당 운임은 9,932원에 불과했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사람들이 왜 고소득 노동자냐"라고 반문하며 "차량 대기시간을 거론하는데, 차에서 쪽잠 자는 시간이 노동시간이 아니라고 하면 정부 공무원들의 실질 노동시간은 얼마나 되겠냐"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에서 화물운송기사들이 화물운송 노동현실과 안전운임제 효과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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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의 핵심 쟁점인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도 화물기사는 '효과가 있다'고 증언했다. 시멘트 운송차량(BCT)을 운행 중인 이성철씨는 "우리는 노동자 지위가 없어 언제든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일거리를 주면 얼마짜리인지 물어보지도 못했고 운임내역서를 요구하지도 못한 채 노예처럼 일했다"면서 "그런데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에는 물어볼 필요 없이 가격이 정해져 있는 데다 어음 아닌 현금으로 임금을 주도록 해 너무 편해졌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비조합원이지만 이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컨테이너 트레일러 운송기사 김윤진씨는 과거 과도한 노동 강도에 일을 그만뒀다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다시 시작한 사례다. 김씨는 "2019년만 해도 일주일에 4번 경기와 부산을 왕복해야 했다면, 이제는 이 부담이 3번 정도로 줄었다"며 "전에는 농담 삼아 하루 4시간 자면 너무 많이 잤다고 했었는데, 안전운임제 이후 근무시간을 조금은 느슨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운임제 효과를 놓고 화물연대와 정부의 해석이 정반대여서 단기간 내 갈등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4일째 이어지는 '강대강' 대치 속에 양측은 대화 물꼬조차 트지 못하고 있다. 토론회를 주최한 심상정 의원은 "법안 처리를 외면하며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보기만 한 국회의 오래된 관행 책임이 크다"며 "국회가 책임 있는 해법을 내놓도록 민주당 및 국민의힘과 만나 적극적으로 주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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