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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스쿨존서 만취 운전해 초등생 숨지게 한 30대…탄원서 제출에 ‘뺑소니’ 혐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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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족 5000명 탄원서 제출·피해 학생 다니던 초등학교 학부모회 항의 방문

대법 판례도 '만취 뺑소니'는 심신미약 불인정…미필적 도주 의사 있는 것으로 판단

세계일보

만취 상태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운전하던 중 초등생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오른쪽)가 9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경찰은 애초 A씨에게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위험운전 치사·음주운전 혐의만 적용했지만, 내·외부 법률 검토를 거쳐 도주 치사(뺑소니) 혐의를 인정해 나중에 추가 적용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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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스쿨존에서 만취해 차를 몰다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 A씨에게 결국 도주치사(뺑소니)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이 구속영장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소위 '민식이법') 및 위험운전치사, 음주운전 혐의만 적용하면서 논란이 제기돼 왔다.

뉴스1에 따르면 경찰은 9일 오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의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어린이보호구역 치사·위험운전 치사·음주운전 혐의로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앞서 피의자 A씨는 지난 2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B군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운전했으며, 초등학교 후문 인근 자신의 집 차고로 들어가는 길에 사고를 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전 집에서 혼자 맥주를 1~2잔 마셨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으로 만취 상태였다.

당초 경찰은 A씨가 주차를 마친 뒤 약 40초 만에 현장에 갔으며, 이후 주변인에게 112 신고를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해 도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봤다.

이에 지난 3일 이른바 ‘민식이법’이라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운전 치사, 음주운전 3가지 혐의만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었다.

이에 피해자 유족 및 같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도주 치사 혐의가 빠진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유족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학생 및 학부모, 지역주민 등 약 5000명의 서명을 받은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모아 지난 7일 강남경찰서에 제출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탄원서를 통해 "가해 운전자에게 뺑소니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 등 운전자의 책임이 축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 사건의 수사가 부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피해 학생이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 학부모회도 사건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끝까지 뺑소니 혐의를 부인한 것 알려졌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운전자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직접 확인했더라면 쉽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현장을 이탈한 것을 미필적인 도주 의사가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만취 상태로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음주할 때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예견하면서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도 있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도주치사, 민식이법, 위험운전치사 모두 각각 별개의 죄로, 실체적 경합 관계로 볼 경우 가장 중한 죄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다"며 "각 법의 형량이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판결이 이뤄질 때는 실체적 경합뿐 아니라 및 양형기준에도 차이가 있어 혐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강남경찰서 측은 지난 8일 "사고 경위에 대해 블랙박스·폐쇄회로(CC)TV 분석 등 면밀한 수사와 함께 피의자, 목격자 진술, 수사심사관·법률전문가 등 내외부 법률 검토를 거쳐 도주치사 혐의를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률 검토 과정에서 도로교통법 제54조1제1항이 규정한 사고 발생시의 조치에 대해 "사고 발생 시의 조치는 사고 내용, 피해자의 태양과 정도 등 사고 현장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돼야 하고, 건전한 양식에 비춰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점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 측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즉시 정차 후 내려서 구호조치를 해야한다는 점 △앞으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자동차 바퀴가 한 바퀴라도 굴러가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공통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피해자보호계 지원을 받아 피해자 유가족의 심리 지원 등 다각도의 유가족 지원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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