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괴짜 천재에서 괴짜 옷 입은 악마로… 뱅크먼프리드의 몰락 [세계는 지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보통의 20대 모습… 새 유형 갑부로 각광

효율적 이타주의 언급하며 기부 적극

FTX 몰락으로 말과 행동 허상 드러나

불법적 자전거래로 사기죄 처벌 걱정

‘괴짜의 옷을 입은 악마(The Devil in Nerd’s Clothes)’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를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에 빗대 표현했다. 그동안 인간미 있는 괴짜 천재로 포장됐던 뱅크먼프리드가 FTX 파산으로 촉발된 가상화폐 연쇄붕괴 사태의 원흉임을 통렬히 지적한 표현이다.

세계일보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뱅크먼프리드는 새로운 유형의 억만장자로 주목받았다.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로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에 열중하는 게임광의 모습은 보통 20대와 다르지 않다. 국내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 ‘뽀글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평범한 외양과 취향에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언행은 자본주의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터뷰마다 철학자 피터 싱어가 주창한 효율적 이타주의를 언급하며 기부에 적극 나섰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행위나 생각을 뜻한다. “세상을 도울 방법을 찾는 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시장붕괴를 막겠다며 파산 위기에 몰린 가상화폐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가상화폐의 백기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FTX에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내 수입 중 99%는 기부하겠다”고 말해 기부 천사 이미지를 구축했다.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프로스포츠를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 스포츠 팬의 환호를 받는가 하면, 막대한 정치후원금으로 워싱턴 정가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FTX 파산으로 괴짜 억만장자는 몰락했다. CEO직을 사임했고, 한때 265억달러(약 33조5000억원)로 추산됐던 재산은 사라졌다.

이젠 도덕성에도 큰 타격을 받아 내부 계열사 간 자전거래로 자산을 부풀린 책임을 물어 사기죄로 처벌받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4억달러(약 5200억원)에 달하는 고객 자금을 횡령해 고급 별장을 사들였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외치던 그간 말과 행동은 모두 가면이었던 셈이다.

그는 결국 회사 내실 강화는 외면한 채 대중에게 비치는 모습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포브스는 “그의 신비주의는 효율적 이타주의와 같은 철학의 포용으로 강화됐으며, 이는 무자비한 돈벌이에 도덕적인 무게를 보탰다”고 비판했다.

이병훈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