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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파 떠나니 폭설… 올겨울이 야속한 '야외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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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한파·폭설에 '이중고' 겪어
많이 벌 수 있어 빙판길 강행군도
한국일보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에서 프레시 매니저 김모씨가 전동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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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춥더니 오늘은 하염없이 눈이 내리네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골목에서 요구르트 전동카트를 운전하던 프레시 매니저 김모(62)씨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전날엔 역대급 한파로 고생한 그였다. 아무리 옷을 껴 입어도 한기가 뼛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추위가 다소 잠잠해지니 폭설이 말썽이었다. 도로와 인도 곳곳에 쌓인 눈을 피해 전동카트를 운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27년째 이 일을 해왔지만 겨울 날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이런 (느린) 속도로는 예정된 구간을 다 못 돌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손 꽁꽁 얼어도 얇은 장갑에 의존


강풍과 혹한, 폭설이 번갈아 찾아오는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에 ‘야외 노동자’들이 울상짓고 있다. 이틀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시베리아급’ 추위가 가자마자 끊임 없이 내리는 눈과 싸워야 할 처지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보니 프레시 매니저들은 수입까지 확 줄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마포구 공덕역 근처에서 전동카트를 세운 채 판매를 하던 이모(66)씨는 “요 며칠 음료를 사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한 시간 동안 카트 앞에서 발길을 멈춘 시민은 고작 3명이었다.

아파트나 빌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노동자 나모(54)씨는 전날 얇은 목장갑 하나에 의지해 철골 절단 등 위험한 작업을 수행했다. 두꺼운 털장갑을 착용하면 감각이 둔해져 손이 얼어도 어쩔 수 없다. 나씨는 “사실 원청에서 핫팩도 지급하고 추우면 휴게실에서 쉬라고 하는데, 일한 만큼 버는 구조라 휴식을 택하는 동료는 거의 없다”고 했다. 폭설도 마찬가지다. 공사가 중단되면 일당을 받을 수 없어 시름만 더 깊어진다.

'혹한 기상할증' 라이더 안전 위협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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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시내에서 배달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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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많아진 배달기사들도 올겨울 날씨는 버겁기만 하다. 안 그래도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큰데 방한화와 겨울 목토시, 패딩 바지로 완전무장을 하고 칼바람과 맞서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이라 방한 장비를 자비로 마련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쓸 만한 방한화나 장갑은 10만 원을 훌쩍 넘고, 오토바이에 부착하는 열선 장치 구입까지 합치면 족히 수십만 원이 든다.

특히 눈이 얼어 만들어진 빙판길이 골칫거리다. 한 번 미끄러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지지만 수익이 커 일감을 놓을 수도 없다. 배달의민족 등 일부 음식배달 플랫폼은 기온이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거나 일정량 이상의 눈이 내리면 ‘기상 할증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평상시와 혹한기 피크시간의 배달료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과속을 하더라도 추울 때 바짝 벌려고 하는 기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위험수당이 지나치게 높아 외려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셈이다. 이날 만난 배달기사 김모(26)씨도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며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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