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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중앙시평] 인공지능은 새로운 인류 역사를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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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명자 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1997년 인공지능(AI)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온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는 TV 자료화면이다. BBC가 제작한 ‘세계의 역사(History of the World)’ 8부작 다큐멘터리(2012년)는 이 사건을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보았다. 인류역사 7만년을 개관하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비에트연방 붕괴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한 것이 역사의 종말이었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AI가 인간 고수를 이긴 사건이라고 본 것이다.

당시 카스파로프는 초당 3개의 수를 계산했고 딥블루는 초당 2억개의 착지 처리를 계산했다고 한다. 카스파로프는 “딥블루는 너무 깊게 보고 있어서 마치 신처럼 수를 놓았다”고 회고했다. 그뒤 2016년 3월 서울에서 벌어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세기적 대결은 AI의 진화에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해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오고 있다”고 말했다.



“AI는 우주 역사 3대 사건 중 하나”

체스·바둑서 인간 꺾으며 새 역사

신외교 핵심 의제가 된 과학기술

정상 기술외교 결실로 이어져야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전환이나 인더스트리 4.0보다 훨씬 광폭의 파괴적 혁신이다. 그 기술적 동인(動因)은 AI·빅데이터·로봇·드론·가상/증강현실·나노기술·바이오·양자기술 등이고, 이들 사이의 전방위적 융합이 하이퍼체인지(다중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중 간의 갈등은 통상을 넘어 핵심기술을 둘러싼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그 과정에서 규칙 기반의 다자주의 국제질서는 소다자주의의 다극체제로 대체되고 있다.

디지털 물리학의 창시자인 MIT의 에드워드 프레드킨 교수는 우주 역사 138억년의 3대 사건으로 우주 탄생, 생명 탄생, AI 출현을 꼽았다. AI의 원조는 1936년 ‘튜링 기계’ 제작과 1950년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 앨런 튜링이지만, 최초로 AI가 언급된 것은 1956년 다트머스 컨퍼런스에서였다. 냉전시대이던 1960년대 AI 연구개발은 미 국방부의 지원으로 활성화된다. 그러나 기술 성숙도가 미흡했고 무기개발에 대한 비판에 부딪쳐 ‘AI겨울’로 들어간다. 프레드킨은 1980년대 재단을 설립해 AI 체스 개발 경진대회를 지원한다. 거기서 1981년 벨연구소의 마스터급 체스 기계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 등이 상을 탔다. 요즈음 AI 대화형 ‘챗(chat)GPT’ 척척박사가 화제다.

최근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 시장의 미래도 AI와 연관된다. AI 서비스 확대에 맞물려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와 프로세서 결합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PIM)가 주목받고 있다. AI의 초거대화는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추론과 성능 고도화가 조건이다. 그 구현에는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하고, 메모리 용량과 속도도 퀀텀 점프를 해야 한다. 결국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가 하나의 칩에 융합된 AI 반도체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 AI 반도체 시장은 40조원 수준이고, 2030년경 반도체 시장의 3분의 1로 예상된다(가트너 예측).

초거대 AI 구현을 추동할 또 다른 기술로 양자컴퓨터가 부상하고 있다. 기존 신경망 컴퓨터의 병렬 데이터 처리방식에 양자 신경망의 데이터 중첩처리 기능을 보강해서 딥러닝 알고리즘의 차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2019년에 제작한 양자컴퓨터는 놀랍게도 슈퍼컴퓨터가 1만년 걸려야 할 계산을 200초 만에 해치웠다. 양자컴퓨터는 양자통신, 양자센서와 함께 양자기술의 3대 핵심으로 모든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양자기술에 돌아갔고, 선진국은 전략기술로 개발에 나섰다.

2000년대 들어 과학외교(science diplomacy)가 신외교로 부상했다. 냉전 종식 이후 글로벌 이슈 해결을 위해 국제협력이 긴요한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이 구축되면서였다. 2010년 영국 왕립학회(1660년 창립)와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1848년 창립)는 과학외교의 주요활동을 ‘외교에서의 과학기술’,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외교’, ‘국제관계 증진을 위한 과학기술협력’으로 정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월 해외순방 중 마지막 공식일정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양자기술 전문가들과의 면담이었다. 그에 앞서 UAE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원자력·수소·태양에너지·방산 등의 협력에 3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 CNN 방송은 “글로벌 비즈니스계에서 한국의 중요한 한 주였다”면서 “회오리바람 몰아친 한 주를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숙명적인 지정학적 한계를 기술정치학으로 극복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이번 윤 대통령의 정상 기술외교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결실을 현실화해서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안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정교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에 우리 젊은 과학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기초연구 역량과 인력 양성, 생태계 구축 등 정확한 SWOT 분석에 의해 민관협동의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하고, 부처간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범부처 협업으로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화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명자 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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