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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삼수, 사수, 오수를 해서라도 의대 가겠다는 흰 가운 향한 열망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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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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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의 명문 사립대 공대에 입학한 A군은 반수생이 됐다. 의대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A군이 처음부터 의사를 꿈꿨던 건 아니다. 공학도의 길을 걷기 위해 공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첫 팀 수업에서 학교에 적만 걸어두고 반수를 하는 학생과 같은 팀이 되면서, 모든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A군은 반수생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알게 됐고 ‘나도 의대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배나 동기들은 의대에 갈 수만 있다면 재수, 삼수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많은 친구가 수능 재도전에 나섰고, A군도 결국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의대 열풍이 만들어낸 현실이다.

A군과 같은 학생이 속출하면서 2021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자퇴한 학생이 1971명이나 됐다. 2007학년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 75.8%가 자연 계열 학생이다.

의약학 계열 재도전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이 늘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상위권 대학의 일부 학과는 재적인원 20%가 자퇴한 곳도 있다고 하니 교육 현장이 얼마나 멍들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반면 202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서울·수도권 의대는 미등록이 한 명도 없었다.

상위권 학생의 의대 쏠림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심화했다. 대량 해고의 직격탄을 맞은 부모 세대는 자녀들을 이공계 대학이 아닌 의대에 보내고 싶어 했다. 의사는 돈과 명예를 다 가질 수 있는 직업인 데다, 의사면허만 있으면 평생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수험생활에 몇 년 더 투자해서 의사가 되겠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이런 개인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대 쏠림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사회의 인적 자원 배분이 왜곡되는 데다, 이공대 교육과정을 황폐화시킨다. 안정 추구 사회는 역동성도 떨어진다.

인재들이 대거 의대에 진학했지만, 정작 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분야 의사 부족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고, 바이오 등 신산업에 진출하려는 의대생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선택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치의학대학원 도입도 의대 쏠림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미래를 이끌어갈 창업자를 꿈꾸게 하고, 신약 개발에 도전하도록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인공지능(AI)이 의사면허 시험에 통과하고, 암을 진단하고 수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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