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맏형'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남다르다.
비단 큰 아들 대학 보내기에 온 집안의 자원이 집중됐던 고단한 산업화 시대의 가부장적 전통까지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맏형'이라는 말은 늘 한 줌 더 얹히는 책임과 그에 비례하는 권위를 동반해 왔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에서도 '맏형'의 지위는 비슷한 듯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동체의 책임이 명시적으로 돌아가는 누군가가 지는 무게는 다소 큰 게 일종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의 맏형을 자처해 왔다.
냉전 시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의 버팀목으로서 물질적 후원을 쏟아부었고, 이는 냉전 이후 말 그대로 세계의 경찰로서 확실하게 다져진 힘의 우위에 따른 강대국의 지위로 이어졌다.
막강한 부와 압도적 군사력에 기초해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맏형'이 변하고 있다.
경제와 무력이라는 두 축 모두에서 중국의 위협적인 추격을 받으며 2인자를 용납하지 않되 자신과 같은 편에 서 있는 동맹들에는 어느 정도 베풀었던 배포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다.
안보와 국익 앞에 항상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 정책의 근간이라고 하더라도 최근 들어 미국이 동맹에 요구하는 것들은 점차 늘어나는 반면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몫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당면한 두 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어느 편에 설지를 묻는 목소리는 한층 집요해진 반면 난감한 줄서기의 대가로는 상보다는 벌을 피하는 것이 혜택이 되는 상황이 도래한 듯 싶다.
누구에게도 유쾌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지정학적으로 중간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은 한층 난감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웃인 일본만 봐도 처지는 꽤 다르다. 군사적으로 중국의 위협을 체감하고 있는 일본은 이미 확실히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필리핀도 최근 미국에 추가로 4개 군사 기지를 제공했다. 중국에 대한 뚜렷한 군사적 메시지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미 동맹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여전한 북한의 안보 위협 앞에 미국의 방위 약속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라기엔 양쪽 모두와 얽힌 함수가 너무 복잡하다.
가끔 달라진 균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킨다. 일종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우리 입장에서 달라진 맏형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통상·산업 분야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 논리까지 가세하며 미국의 부활과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 노선은 경제 분야에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의 한 고위 관료가 북미산 전기차 특혜 논란이 제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한국의 반발 여론을 보고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전해지는 말로 이 고위 관료는 "이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크게 반응하면 어떻게 하느냐. 더 큰 것이 온다"고 했다고 한다.
더 큰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정부는 여기에 대비는 되어 있는가. 미국이 선별적으로 '내 편'을 골라 경제적 방주에 태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여기 포함될 수 있는가. 잔혹한 시절은 예상보다 이르게 도래할 수도 있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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