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빗썸이 카카오뱅크와의 실명계좌 계약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비즈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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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실명계좌를 제공할 새로운 제휴 은행을 찾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가상자산 시장이 위축돼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데다, 금융 당국이 불법송금이나 자금세탁 등 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면서 제휴에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상 가상자산 거래소는 반드시 시중은행으로부터 입출금 계좌를 발급받아야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투자자들은 시중은행의 계좌에서 실명 인증을 거친 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코인을 매매할 수 있다. 현재 은행과 실명계좌 제공 계약을 맺고 운영 중인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뱅크), 빗썸(NH농협은행), 코인원(카카오뱅크), 코빗(신한은행), 고팍스(전북은행) 등 5곳이다.
◇ NH와 계약만료 앞둔 빗썸, 카뱅에 눈독
22일 가상자산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2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은 다음 달 NH농협은행과의 실명계좌 제공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파트너 은행을 물색하고 있다. 여러 은행 가운데 빗썸이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파트너 후보는 카카오뱅크로 알려졌다.
빗썸이 카카오뱅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새로운 잠재 고객을 얻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상자산 시장 불황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코인판을 떠난 상황에서 20~30대 젊은 층의 이용률이 높은 인터넷은행과 손을 잡게 되면 이들을 자연스럽게 가상자산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카카오뱅크 오피스 모습. 2022.2.2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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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빗썸의 바람과 달리 금융 시장에서는 카카오뱅크가 제안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원과 실명계좌 제공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고 추가로 빗썸과 손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빗썸은 실소유주 의혹과 배임, 횡령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현재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실제로 카카오뱅크 측에서도 빗썸과의 계약 여부에 대해 “몇 차례 만남은 가졌지만, 코인 시장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일 뿐 추가 파트너십을 위한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업계 5위 규모 거래소인 고팍스에 실명계좌를 제공 중인 전북은행의 경우 계약을 지속할 지 여부를 두고 고심 중이다. 최근 세계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바이낸스는 현재 조세 회피처인 케이맨제도에 서류상 본사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인 경영 사항이나 회계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회계법인 마자르는 신뢰성 문제를 들어 바이낸스와의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 코인 시장 얼어붙자 손 터는 은행권
가상자산 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거래소와의 협업에 대한 은행들의 분위기가 지난해와 사뭇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초만 해도 은행들이 젊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신성장 동력 확보 등을 위해 가상자산거래소와의 실명계좌 제공 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는 2019년부터 업계 1위 거래소인 업비트와 손을 잡은 후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의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업비트로부터 4년간 388억원에 이르는 계좌 이용 수수료를 받았다.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혁신적인 이미지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NH농협은행의 경우 빗썸과 코인원 2곳의 거래소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20일 루나 사태 조사와 관련해 서울 강남구의 업비트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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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은행들 역시 실명계좌를 제공하고 얻는 수수료 수익이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게다가 최근 당국이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있는 점도 은행들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검찰과 금융감독원 등은 지난해 말부터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세탁과 재산 은닉, 불법송금 등 여러 범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올해 초 코인마켓 사업자에 대한 자금세탁행위 방지 체계 구축과 운영 현황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업비트가 88% 장악한 코인 시장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은행들이 협업에 소극적인데 대해 코인 시장의 ‘업비트 쏠림’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1위 거래소인 업비트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소형 거래소들과 손을 잡아도 얻을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량 점유율을 보면 업비트의 비중은 약 88%에 이른다. 빗썸과 코인의 점유율은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빗과 고팍스의 비중은 1%를 밑돌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루나 사태에 이어 최근 위믹스의 상장폐지 번복 논란, 코인 사기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라며 “브랜드 이미지에 민감한 은행들이 사고 위험과 당국의 점검 부담 등을 감수하고 굳이 코인 거래소들에 손을 먼저 내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들이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과 계좌 제공 계약을 새로 맺어도 계약 기간이나 수수료 등 여러 조건이 과거에 비해 훨씬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진상훈 기자(caesar8199@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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