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난 그 여자 불편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지난 십여년간 신문, 잡지에 발표한 잡문을 모아 펴낸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를 발간하고 2주가 지났다. 기대한 만큼 책이 팔리지 않지만 세상일이 어디 다 내 뜻대로 되랴. 출판 기자간담회를 했다면, 이미출판사 로고가 찍힌 멋진 봉투에 신간을 넣어 언론에 돌렸다면 기자들 눈에 쏙 들어와 더 많은 신문에서 신간 소개를 쓰지 않았을까? 몇 년 전에 이미출판사 로고가 들어간 봉투를 1000장 주문제작할 때만 해도 언제 저걸 다 쓰나, 출판사 문을 닫을 때까지 봉투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 소진됐다. ‘이미’의 마지막 봉투에 사인 본을 넣으며 약간의 감회가 일었다. 홍보용으로 책을 1000부나 뿌렸고 창업 4년에 출판사가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성공 아닌가.




산문집 제목을 왜 ‘그 여자 불편해’로 붙였냐고 묻는 분이 많다. 내가 제목감으로 뽑은 ‘어렵다고 생각한 일이 가장 쉽더라’ ‘적당한 고독’ ‘난 그 여자 불편해’ 이 셋 중에서 어느 게 좋을까? 젊은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그 여자’가 참신하다고 해서 제목으로 낙점했다. ‘여자’와 ‘불편’이 들어간 제목 때문에 페미니즘 책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번 산문집에 ‘미투’ 관련글은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대개의 글은 원고 마감이 닥쳐 떠오르는 대로 쓴 수필,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주면 좋겠다.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는 맞춤법 몇 개 틀려도 넘어갔는데 내가 대표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에 오자가 많으면 내 책임! 혹 오탈자가 있을까 봐 1쇄를 1000부만 찍고 1쇄가 나온 날에 본문을 두어 군데 수정해 바로 2쇄 2000부를 발주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틀린 표현을 발견해 밤에 잠을 설쳤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인쇄소에 전화해 본문 수정이 가능한지 물었다. 아직 제본은 안 하고 접지만 한 상태라 수정한 페이지를 다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에는 띠지를 두르지 않았다. 서점에 책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 눈에 띄려면 띠지를 둘러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으나 띠지를 입히는 비용도 만만치 않거니와 띠지는 유통과정에서 잘 구겨진다. 손상된 띠지를 바꿔 달라고 서점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직접 띠지를 교체해주러 가야 한다. 띠지가 손상됐다고 ‘반품’이 들어올 수도 있다. ‘반품’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 띠지를 두르지 않기로 했다. 요란한 띠지로 돋보이지 않아도 글이 돋보이면 된다고 자위하며.... 띠지는 1회용 소모품이며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띠지를 두르지 않는 운동이 출판계에 확산됐으면 좋겠다.

2018년 2월 어느 날 jTBC ‘뉴스룸’ 생방송에 나가며 내 인생에 폭풍이 들이닥쳤다. 2018년 여름에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고 며칠 뒤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 내 사건을 다루는 방송을 보게 됐다. 패널로 나온 어느 변호사가 원고인 고은 시인과 최영미 사이의 법적 다툼을 언급하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내가 계란이라고? 그를 바위라고 보는 세간의 눈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건드리면 깨지는 계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바위라고 여기지도 않았지만 남들이 나를 계란이라고 업신여기니, 내가 바위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시인·이미출판 대표

meel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