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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중국 앞에 힘 모으는 필리핀·말레이시아 “미얀마·남중국해 문제에 의기투합하자”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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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 회담

장기집권자 2세와 민주화 상징의 협력 다짐

남중국해 갈등에 양국 포함 아세안 한목소리 필요성 공감

필리핀 “민다나오 해결에 도움 준 말레이시아에 고마워”

안와르, 취임 100일 이웃 5개국 방문하며 정상외교

‘아시아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과 장기집권 독재자의 후손의 정상회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이달 초 마닐라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을 이렇게 규정한 매체를 동남아 주류 언론에서 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신에 10년 투옥을 거치며 예상보다 25년 지각 당선된 안와르 총리에 대해서는 필리핀 언론에서 극진하게 다뤄졌다, 말레이시아 언론은 필리핀 매체와 여론이 자국 총리를 환영하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전했다. ‘아들’ 마르코스 대통령이 21년 장기집권한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의 2세라는 점은 애써 강조하지 않았다. 아니러니하게도 자국 내에서의 입지는 민주화의 상징 안와르 총리가 장기독재자 아들 마르코스 대통령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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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방문중인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오른쪽)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1일 마닐라 말라카낭 대통령궁에서 이뤄진 환영 리셉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닐라=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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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나라이다.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말레이문화와 이슬람문화를 일부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믈라카해협과 순다해협을 통해 해양부 동남아에 영향을 미쳤던 이슬람 문화가 민다나오까지 전파됐다가 스페인 진출로 가톨릭문화가 대세를 형성한 곳이 필리핀이다.

여러 차이점에도 이런 유사성을 지닌 두 나라의 정상이 만났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이뤄지고 있는 안와르 총리의 광폭 정상외교 행보다. 지난해 11월 24일 취임한 안와르 총리는 정상에 오른 지 100일도 안 되는 기간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이웃나라 5개국을 방문했다. 일련의 국빈 방문에서 공통의 관심사인 미얀마 군정사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아세안 회원국 중 방문하지 않는 나라는 대륙부의 CLMV(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로 언급되는 4개국이다.

그의 필리핀 방문은 지난 1∼2일 이틀 일정으로 이뤄졌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의 방문을 적극 환영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선거를 통해 6월에 취임했다. 1986년 민주화운동 ‘피플 파워’로 물러나야 했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아버지의 퇴진 당신 어머니 이멜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이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면서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닐라타임스 등 필리핀 언론에 따르면 안와르 총리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필리핀을 찾은 외국 정상이다. 반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 등을 찾는 등 9개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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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2일 케존시티 소재 필리핀대학교(UP)에서 개최된 명예 법학박사 수여식에서 강연을 한 뒤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와르 총리는 이날 필리핀 국민영웅 호세 리잘의 삶과 그에 대한 존경의 뜻을 피력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케존시티=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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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푸드·식량안보 협력 강조…마르코스 “취임 이후 맞이한 첫 외국정상”

양국 정상은 2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아세안의 번영과 두 나라의 지속적인 우호 증진을 강조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로 기자회견을 했다. 동남아 국가의 정상이 자국어가 아닌 영어을 사용해 회견을 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먼저 연설을 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우리 두 사람은 아세안 지역 안보와 번영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상대국에 대한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사태를 극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할랄푸드와 식량안보, 디지털 경제, 관광 분야 등에서도 양국의 협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와르 총리도 같은 내용을 재확인하며 여러 분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투자 활성화와 문화·인적교류, 고위급 회담 개최 등도 언급했다. BIMP-EAGA(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동아세안 성장지대)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해양 동남아 4개국의 낙후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한 것이다.

양국 정상은 모두 연설 말미에 안와르 총리의 필리핀 방문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내가 취임한 뒤 필리핀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 안와르 총리”라며 “총리의 방문으로 아세안 형제국가로서 번영과 평화를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안와르 총리도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화답했다. 그는 “대통령이 농업부 장관이었을 때 말라카낭 대통령궁에서 만났는데, 이제 (마르코스) 대통령이 된 뒤 다시 만나서 매우 기뻤다”며 “환대와 여러 감사한 말씀들에 대해 매우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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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 직후인 지난 2021년 3월 미얀마 ‘국군의 날’을 맞아 육군 부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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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정사태 조기 해결 촉구…아세안 역할 공감

양국 정상은 미얀마 군사정부 사태의 조기 해결도 촉구했다. 미얀마에서는 2021년 2월 발생한 군사 쿠데타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축으로 한 군정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정은 8월 총선 실시를 예고하고 있지만, 애초 일정보다 총선이 수 차례 연기된 것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안와르 총리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5개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을 반복해 강조했다”고 밝혔다. 2021년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들의 모임에서 합의했던 5개 합의사항에 대한 미얀마 군정의 이행을 강조한 것이다. 안와르 총리는 “미얀마 군정이 아세안 회원국들과 협력하도록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미얀마의 미해결 이슈들은 지역의 안보와 평화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한 역내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얀마 군정이 아세안에 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세안은 회원국의 내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역내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아세안 자체의 위상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와르 총리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인접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얀마 사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아세안의 역할 강화를 위한 주문이기도 하지만, 미얀마 난민 20만 명이 유입된 말레이시아의 고민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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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등이 자리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도심의 스카이라인 모습.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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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문제 인식 공유·민다나오 평화 중요성 인지

양국은 남중국해 갈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인근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 국가로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포함해 브루나이, 베트남 등이 있다. 두 정상은 남중국해 문제가 민감하고 복잡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와르 총리는 3일 방영된 필리핀 방송 ABS-CBN과 특별 대담에서도 “남중국해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아세안 차원에서 먼저 대화하고 중국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며 “아세안 내부적으로 조그마한 이견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해서 중국을 상대할 때는 같은 입장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세밀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세안 회원국들의 합의 노력을 설명한 것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에 보다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안와르 총리의 발언은 주목된다. 안와르 총리는 전임자들, 특히 모하메드 마하티르 전 총리에 비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추를 맞추려 하고 있다.

두 나라 정상은 필리핀 민다나오 등의 평화 조치에 대해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민다나오와 술루 군도는 필리핀에서 보기 드물게 무슬림 주민이 많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스페인 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이 대세인 북부의 루손, 중부의 비자야 지역과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다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다른 해양부 국가들처럼 이슬람 영향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필리핀 중앙정부와 민다나오 등의 무슬림 부족 13개족를 장기간 중재하며 평화체제 정착에 역할해 왔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와 관련, 말레이시아의 역할과 공헌에 감사하다는 뜻을 반복해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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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왼쪽)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1일 필리핀 마닐라 말라카낭 대통령궁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 도중 악수를 하고 있다. 마닐라=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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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 ‘필리핀 영웅’ 호세 리잘 언급하며 공공외교 부문 역할도

안와르 총리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로 필리핀 언론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정상회담 외에도 방송 인터뷰, 필리핀대학교(UP) 명예 법학박사 수여와 강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제시한 화두는 미얀마 사태 해결, 아세안 경제협력, 민다나오 평화 체제 지원 등이었다. 필리핀 국민영웅 호세 리잘을 언급하는 등 정상의 공식외교는 물론 공공외교 측면도 적극 챙기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11월 24일 취임한 안와르 총리가 그동안 국빈 방문한 국가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태국, 필리핀, 트뤼키예다. 그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미국과 독일, 싱가포르 등의 고위층 인사도 접견했다. 향후 입지가 여당 연정의 안정성을 비롯해 경제성장, 외교 성과 등에 따라 규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외교 부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안와르 총리는 앞서 지난 2월 태국 방문에서는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제안하면서 이전의 입장과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1990년대 말 부총리였던 그는 외환위기 대처 방안을 놓고 마하티르 당시 총리와의 갈등 때문에 실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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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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