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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카페 2030] K팝 많이 팔면 그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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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한국적인 사례다.”

최근 SM 사태를 취재하며 음반업계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해외에서도 오랜 역사의 음반사가 경쟁사에 합병된 사례는 있었다. 저명한 프로듀서 베리 고디(94)가 세운 모타운은 1960~7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를 쥐락펴락했지만, 결국 지금의 유니버설뮤직으로 흡수됐다.

모타운은 SM은 물론 JYP, YG 등 국내 주요 K팝 기획사들의 모델로도 꼽힌다. 베리 고디는 ‘흑인도 백인도 좋아하는 대중음악’ 제작을 지향했다. 음악 평단에선 달달한 사랑 노래만 찍어내는 ‘공장’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철저한 기획·트레이닝을 거친 걸그룹 슈프림스, 보이그룹 잭슨파이브 등을 크게 성공시켰다. 오늘날 K팝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대다수 관계자들은 모타운 사례를 이번 SM 사태와 겹쳐 보길 거부했다. 적어도 모타운 합병 과정에선 SM·카카오·하이브처럼 잡음이 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베리 고디와 인수 관계자들이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대중음악 사업은 단순히 노래를 팔 뿐만 아니라 팬들과 신뢰를 유지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는 상식에 따른 결과였다. 한 평론가는 “당시 음반사를 사고파는 양측 모두 서로에게 침을 뱉으면 결국 팬심으로 침이 튄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SM을 누가 갖든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거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상식의 부재 때문이다. 어느 팬은 “(SM 소속 걸그룹) 에스파 노래를 들으면 이수만이 특정 가사를 노래에 넣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SM도, 하이브도, 카카오도 다 싫다. 소속 가수들은 무슨 죄냐”며 돌아선 팬도 적지 않다.

K팝 기획사들의 음악을 향한 모순적 관점은 이런 우려를 더 부추긴다. 지난 3일 서울대 한류연구센터에서 연 ‘SM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선 ‘팬에게 팔리는 음악’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팬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하이브가 내놓은 ‘SM의 미래’를 살펴보면 서로 반목 중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똑같이 팬덤 사업 활성화의 중요성을 외친다. 하지만 정작 그 사업에 지갑을 열 팬들의 목소리는 이 싸움에서 무시되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 3일 미국 CNN 인터뷰에서 SM 인수 배경으로 ‘K팝 성장률 둔화’를 꼽았다. K팝의 성장률 향상을 위해서 하이브가 SM을 흡수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 측도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팬덤 산업에서 뒤처져 위기를 겪고 있다”는 호소를 자신들의 연합 당위성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양쪽 모두 K팝의 본질을 그저 ‘더 많이 팔기 위한 음악’으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든다. 팬과의 신뢰는 저버리고 많이 팔기만 하려다 끝내는 팔리지 않는 음악이 되진 않을까.

올해 초 베리 고디는 대중음악 발전의 큰 기여자로 박수를 받으며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했다. 과연 SM 사태 주역들에게 그런 무대가 주어지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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