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료 지원에 언어·문화 교육
이주민이 필요 정책 직접 제안도
권리 증진=노동시장 상향평준화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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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동네에 일시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온다는데 걱정 안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난달 24일 울산 동구 남목동에서 만난 김유경(45)씨가 꺼낸 얘기다. 지난해 2월 아프가니스탄 기여자 29가구 157명이 정착한 남목동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들이 다수 거주한다. 이 때문에 조선업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이 예상되는 남목동 주민들은 걱정이 앞선다. 김씨는 "아이랑 매일 지나는 골목에 낯선 이방인들이 또 대거 들어온다고 하니 솔직히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있냐"면서 "아프간인들과 지내 보니 똑같은 이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문화가 달라 차이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적응 프로그램 추진
정부가 산업현장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올해 이주노동자 쿼터를 늘리기로 했지만 정작 해당 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더 크다. 이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 정착은 물론 지역주민들과의 조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에 분주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업장이 몰려 있는 울산 동구가 대표적이다. 동구 관계자는 15일 "올 1월 기준 관내 이주노동자는 4,261명으로 동구에는 연말까지 900여 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라며 “경찰서와 다문화센터, 조선소 등 유관 기관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치안 등 주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동구는 특히 지난해 아프간인 이주 과정에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만큼 지역사회 갈등과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 남목동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50대 남성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아프간 이주민들도 조심하는 게 눈에 보인다"면서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국가 이주노동자들까지 늘어나면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새로 이주해 오는 이주노동자의 적응이다. 이 때문에 구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적응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우선은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 외국인 상담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장기적으로는 고용노동부 이주노동자 지원 거점센터를 유치하기로 했다. 또 전담팀을 구성해 이주노동자들의 출입국, 노동 상담, 생활·법률·의료정보 등을 지원하고, 한국어 및 문화 교실도 운영할 계획이다.
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9일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이상균 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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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호중공업이 있는 전남 영암군은 주민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이주민지원팀을 신설한 데 이어 최근 이주민들이 직접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창구도 마련했다. 1년 이상 영암에 거주 중인 8개국 12명으로 구성된 외국인 주민 군정 모니터링단은 이주노동자 등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과 외국인 주민 간 디딤돌 역할을 맡는다.
이달엔 삼호읍 일원에 외국인주민 지원센터도 문을 연다. 상담지원실과 멀티미디어실, 북카페 등을 갖춘 지원센터에서는 각 국가의 문화 이해와 언어 습득을 돕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암군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도모하기 위해 기초생활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주민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행사도 다양하게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전남 외에 이주노동자 조례 없어
이주노동자 지원은 상대적으로 다문화가정에 비해서도 소홀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조례를 별도로 제정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이주노동자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는 지난달 14일 이주노동자 전용 공공기숙사 설립 등 주거 개선책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했다.
전남도도 이주노동자 보호·지원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실태조사·지원사업, 지원센터의 설치·운영 관련 사항, 사업비 보조, 기관·단체 등과의 협력체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라남도 이주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 제정에 착수했다. 충남도와 부산시도 2021년 이주노동자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17개 광역시도 중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도에는 이주노동자 지원 관련 조례가 없다. 한 다문화지원센터 관계자는 “개인 노동자로 왔다가 가족을 초청해 사는 경우도 많은데, 대부분의 지원사업이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다문화가정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법적 지원 근거를 전반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숙소 내부 모습. 이주노동자들은 흙먼지가 수북한 바닥에 녹이 슬어 있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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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 결국은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노동시장에 외국인들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기본권 보장은 결국 전반적인 노동 환경 조건을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당장 인력 도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체계적인 총괄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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