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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백질 풍부한 닭발 드세요” 홍보에… 이집트 국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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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집트 카이로의 한 시장. /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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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물가 상승을 겪고 있는 이집트가 국민들에게 닭발 소비를 권장했다가 원성을 사고 있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 닭발이 식재료로 쓰이는 것과 달리 이집트에선 반려견 사료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된다.

매체에 따르면 식료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이집트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식재료 가격이 올라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이집트의 이달 물가상승률은 30%를 넘어섰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밀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데, 밀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밀 공급이 급감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이외에도 식용유와 치즈 등 기본 식재료 가격이 지난 몇 달 사이 2∼3배가 올랐고, 육류 가격도 크게 올라 ‘고기가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 됐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닭고기 가격이 비싸다보니 정부는 지난해 저렴한 닭발을 먹자고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이집트 국립영양연구소(NNI)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영양이 높고 예산에도 도움이 된다”며 닭발을 알렸다. 그러나 닭발을 단백질이 많은 부위라고 홍보한 것이 오히려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한다. 카이로 교외 기자시의 가금류 시장 주변에서 구걸하던 남성도 “신이여, 우리가 닭발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마소서”라고 말할 정도다.

화폐 가치의 하락도 물가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월 기준 달러당 15 이집트파운드였던 환율은 1년 만에 달러당 32.1 이집트파운드까지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로 인해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차지하는 관광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전체 관광객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행객들이 줄어든 영향도 컸다.

이로 인해 서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매달 5000 이집트파운드(약 21만원)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웨다드(60)는 1년 전만 해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먹고 사는 것조차 빠듯하다고 한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고기를 먹거나 일주일에 한 번 닭고기를 먹는다”며 “달걀도 요즘은 한 알에 5 이집트파운드(약 208원)씩이나 한다”고 했다.

웨다드는 “닭고기를 사기 위해 잔돈까지 긁어모았다”며 “한 상인은 닭 살코기를 1㎏에 160 이집트파운드(약 6772원)에 팔고 200 이집트파운드(8466원) 까지 부르는 사람도 있다”며 “반면 닭발은 20 이집트파운드(846)원 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지난 6년간 국제통화기금(IMF)에 4차례 걸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정부 세입의 절반가량을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 BBC는 과거 경제난으로 촉발된 폭동이 호스니 무바라크와 모하메드 무르시 전 정권을 몰락시킨 경험이 있다며, 경제난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분노가 소요 사태로 이어질 조짐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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