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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반값 전기차와 변속기의 흥미로운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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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교수, 김정덕 기자]

전기차의 경쟁 포인트가 바뀌고 있다. 과거엔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와 같은 기술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가격이 주요 경쟁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미 테슬라는 가격 할인에 들어갔고, 가격을 더 낮춘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건 우리나라가 이미 전기차를 '반값'으로 떨어뜨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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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전기차 가격을 낮추면서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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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순수전기차 BEV 기준) 판매량은 802만대로 2021년(472만대)보다 115.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완성차 판매량 대비 전기차 비중도 5.9%에서 9.9%로 4.0%포인트 상승했다. 완성차 10대 중 1대꼴로 전기차가 팔렸다는 얘기다.

시장 성장세와 함께 전기차의 성능은 한결 개선되고 있다. 일례로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더이상 전기차 구매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웬만한 전기차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어느 정도 성능을 갖춘 값싼 전기차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테슬라의 점유율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했던 테슬라는 다양한 경쟁자의 도전을 받고 있다. 2020년 테슬라의 시장점유율(판매량 기준ㆍ한국자동차연구원)은 22.3%였지만 2021년엔 19.6%, 2022년엔 16.4%로 줄었다. 80%대를 웃돌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60%대로 떨어졌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모빌리티는 지난해 11월 "5만 달러 미만의 전기차들이 미국 시장에 출시된 후 테슬라의 시장지배력이 약해지고 있다"면서 "2025년엔 테슬라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경쟁사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테슬라를 위협하고 있고, 이를 방어하지 못하면 테슬라의 아성이 크게 흔들릴 거라는 얘기다. 테슬라가 최근 자사의 전기차 판매 가격을 낮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기차 시장에 드리운 가격 경쟁

테슬라는 지난 3월 6일(현지시간) 미국 시장에서 모델S와 모델X의 가격을 각각 5000달러(약 660만원), 1만 달러(약 1320만원)가량 인하했다. 테슬라는 지난 1월에도 전기차 가격을 대폭 할인한 바 있다. 가격을 확 낮춘 보급형 전기차 모델2를 출시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테슬라가 본격적인 가격 경쟁에 나선 건데, 이제 전기차 시장의 화두는 가격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몇몇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처럼 가격을 낮출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완성차 업체의 영업이익률이 테슬라보다 훨씬 낮아서다.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은 10%대 중반인데, 타 완성차 업계는 5~10% 수준이다. 가격을 낮춰야 전기차 패권 다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낮출 방법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게다가 어설프게 가격을 낮췄다간 브랜드 이미지만 추락할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기술력을 통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거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전기차 가격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방법도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가격이 30%가량 저렴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사용하면 된다. 실제로 포드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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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제가 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성능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리튬이온 배터리보단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도 짧다. 따라서 저가 전기차 시장이 아니고선 한계가 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을 CATL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꽉 잡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여차하면 중국 제품을 가져다 써야 한다는 건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점점 더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리스크가 있다.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면 전고체 배터리를 채택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에선 대량 생산과 경제성 확보 등을 고려할 때, 대략 2030년이 지나야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또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건 바로 전기차용 자동변속기를 탑재하는 거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필자는 전기차용 변속기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에 변속기가 왜 필요하냐는 반문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일부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에 변속기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포르쉐는 2020년 타이칸에 2단 자동변속기를 달았고, 2021년엔 아우디가 e트론에 2단 변속기를 탑재했다. 같은해 대만 최대의 전기이륜차 업체인 킴코 역시 2단 변속기를 적용한 모델을 출시했다. 올해는 미국의 버스 제조사인 프로테라가 변속기 제조사인 이튼의 4단 변속기를 장착하기로 했다.

이 기업들이 전기차용 변속기를 탑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기차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어서다. 전기차에 변속기를 달면 같은 배터리 용량으로도 주행거리를 30~50% 늘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리튬인산철 배터리나 전고체 배터리로 바꾸지 않고도 '반값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K벤처, 이미 7단 자동변속기 개발

더 흥미로운 사실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용 변속기 개발은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 국내의 한 벤처기업(바이젠)은 지난해 전기이륜차용 7단 자동변속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변속기는 올해부터 동남아시아의 주요 이륜차 시장인 인도네시아에 5만대(2025년까지 3개 업체)를 공급하는 계약까지 마쳤다. 1년간 현지의 여러 기업이 진행한 성능 테스트에서 합격점을 받은 결과다. 이미 시장의 검증이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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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속기를 전기차용 변속기로 응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특히 가격만 낮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변속기의 단수가 높을수록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등판능력(1단 기어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힘)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모터 등 각종 장치의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 냉각장치의 역할도 감소한다. 아울러 전기차의 무게가 가벼워져 소모품 교체 주기도 줄어든다. 충전 주기와 충전 속도도 줄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갈수록 격화할 전기차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기술을 정부 또는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채택하느냐다. 기술력을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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