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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부, 맥주·막걸리 물가연동제 폐지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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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현행 종량세 개편 검토

소주·와인과 과세 형평성 논란

[주간경향] 정부가 ‘물가가 오르면 맥주와 탁주(막걸리) 가격도 따라 오르는’ 현행 주세 체계를 손질한다. 업계가 세금 인상을 핑계로 판매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 고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매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물가연동제’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연구용역을 맡기고 여론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나,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가 변동과 무관한 소주 등 주류와의 과세 형평성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세율 조정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방안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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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세 물가연동제 개편, 왜


“맥주·탁주에 종량세를 도입하면서 물가 연동으로 (과세)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9일 기재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현재의 맥주·탁주 세제를 개편하겠다면서 한 말이다. 종량세는 술의 용량을 기준으로 주종별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가격이 달라도 종류와 양이 같다면 같은 세금을 부과한다. 종량세율은 매년 물가를 반영해 조정한다. 물가 상승에 따라 가격이 오른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소주 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지난해 고물가(5.1%) 상황 등을 반영해 물가상승률의 70%인 3.57%를 올렸다. 이렇게 결정된 세율은 4월부터 적용된다.

정부가 물가연동제 폐지까지 거론하며 재검토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세율 인상이 업계에 빌미를 줘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류 제조업체들이 세금 인상을 이유로 맥주·소주 등 출고가를 인상하면, 이후 마트와 편의점, 식당 등에서 연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기재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외식 품목’ 중 맥주의 물가지수는 112.63(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10.5% 올랐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맥주의 상승률(5.9%)을 훨씬 웃돈다. 식당이나 주점에서 팔리는 맥주가격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팔리는 맥주가격보다 더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다른 주류도 마찬가지다. 소주는 외식 품목이 11.2% 올라 가공식품 상승률(8.6%)을 웃돌았다. 막걸리도 외식 품목 상승률(5.1%)이 가공식품 상승률(1.6%)보다 높았다. 추 부총리는 “세금 (인상) 탓에 15원 정도 맥주가격 상승 요인이 있을 때 (업계가) 맥주가격을 1000원에서 1015원으로 15원만 올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주류업계는 가격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가격을 동결하는 분위기다. 물가연동제에 따라 올해 인상분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1ℓ당 붙는 세금은 맥주의 경우 30.5원이 추가돼 885.7원이 되고, 탁주는 1.5원이 추가돼 44.4원이 된다. 330㎖ 캔 기준으로 약 6.8원(275.4→282.2원), 640㎖ 병 기준으로는 약 13.3원(534→547.3원) 인상된다. 정부는 지난 2월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과 관련해 제조사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비맥주는 카스 등 국산 맥주의 가격을 당분간 동결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2~3월 약 3년 만에 소주 제품 가격을 8% 정도 올린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도 가격 인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수입 맥주와 막걸리는 원가와 물류비 상승 등의 이유로 4월부터 가격이 오를 예정이다. 오비맥주가 수입·유통하는 버드와이저, 스텔라아르투아, 코로나 등의 가격은 3월 중 평균 9% 오른다. 우리술의 톡생막걸리(750㎖) 가격은 1950원에서 2300원으로, 가평잣생막걸리(750㎖) 가격은 1850원에서 2300원으로 각각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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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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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 어떻게 바뀌었나


주류에 붙는 세금을 다룬 주세법은 1949년 제정됐다. 모두 종량세 체계였다. 1968년부터는 주류 소비를 줄이고 세수를 늘릴 목적으로 종가세 체계가 도입됐다. 주류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은 출고가격이 인상되면 부과 세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상태에서 세수가 증대될 수 있고, 공평과세를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재료가 싸면 세금을 적게 내고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는 반면, 양질의 원재료나 고급 포장재를 사용하는 비싼 주종일수록 세 부담이 늘어난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전환 논의는 1999년 6월 세계무역기구(WTO)의 주세율 조정 판정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WTO는 당시 35%였던 소주 주세율과 100%였던 위스키 주세율의 차이가 규정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같은 증류주임에도 국내산과 외국산을 차별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WTO 결정에 따라 소주 등 증류주의 세율을 72%로 일치시켰다.

정부는 다만 국민 여론 등을 이유로 종량세 전환 논의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종가세 체계에 가장 큰 불만을 표출한 건 맥주 업계였다. 마트나 식당에서 사먹는 맥주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수입 맥주 간 형평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 매출, 이익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에 세금이 붙는 반면, 수입 맥주는 마케팅과 유통 등의 비용이 과세표준에서 빠진 수입 신고 시점 가격에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낮았다. 2019년 국세청에 따르면 출고가격(제조원가+이윤+판매관리비)을 과세표준으로 한 국산 맥주의 주세는 ℓ당 평균 848원이었으나, 수입 신고가격(수입가액+관세)을 과세표준으로 하는 수입 맥주에 부과된 세금은 ℓ당 709원이었다. 국산 맥주 업계는 이 때문에 수입 맥주가 ‘4캔 1만원’과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했고, 이를 앞세워 단기간에 시장점유율(2015년 8.5%에서 2018년 20.2%)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9년 6월 맥주와 탁주부터 종량세로 전환키로 하고 이듬해부터 적용(물가연동제는 2021년부터 적용)했다. 맥주업계 등의 불만도 있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고품질 재료를 사용하면 출고원가가 오르면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었다. 세계적 흐름도 비슷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종량세 체계를 도입한 국가가 30개국이었다.

맥주와 탁주는 종량세로 전환됐지만 소주는 기존 종가세가 유지됐다. 소주뿐 아니라 같은 증류주인 위스키 등까지 종량세로 전환하면 세 부담이 대폭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소주업계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같은 증류주이면서 소주의 대체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스키, 보드카, 백주, 화요 등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2020년 5월 최종적으로 종량세 전환 대상에서 소주를 제외한 이유에 대해 “소주세율이 대폭 올라가거나 위스키 세율을 대폭 낮춰야 하는데, 소주세율 대폭 인상은 쉽지 않고 위스키 세율을 소주만큼 낮춰주는 게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소주와 위스키는 종량세로 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당시 WTO 결정을 계기로 모든 주류에 종량세 전환을 검토한 것이 사실이지만 소주업계뿐 아니라 여러 반대 여론을 의식해 사실상 기형적인 형태로 맥주와 탁주만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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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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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연동제 개편, 기대와 우려는


물가연동제 전면 재검토에 나선 정부는 관련 연구용역과 공청회 등 외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한다. 구체적인 개편 내용은 올해 7월 세법 개정안에 담아 발표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물가연동제를 폐지하거나 매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방식이 아닌 비정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세율조정은 정부가 아닌 국회가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3월 9일 간담회에서 “세금을 물가에 연동하기보다는 종량세도 일정 시점에 한 번씩, 국회에서 양에 따라 세금을 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주류가격 상승 결정에 따른 책임과 부담을 국회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물가연동제를 폐지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 오를 때마다 세금이 인상되는 소주·와인·위스키 등과의 과세 형평성 논란이다. 종가세 대상 주종은 물가 상승에 따라 출고가격이 인상되면 그만큼 세 부담이 증가하는 반면, 양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 대상 주종은 물가 반영은 되지만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세금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물가와 판매가격이 오르는데 맥주와 탁주에 붙는 세금이 그대로라면 업계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후 세금 인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율 인상을 미루다 한 번에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해야 할 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2005년 이후 근 10년 만인 2015년 세율이 인상된 담뱃세가 대표적이다. 당시 1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가격이 큰 폭 오르면서 국민 여론이 크게 나빠졌다. 추 부총리가 종량세율 조정의 주체로 언급한 국회가 물가가 올랐다고 해서 국민 여론과 무관하게 주류가격을 올릴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율을 조정해 물가를 잡겠다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업계에서 출고가는 그대로 두면서 원자재 등 물가상승분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항목에서 비용을 추가할 수 있다. 또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팔리는 맥주와 막걸리의 판매가격을 정부가 강제해 묶어둘 수도 없다. 업계 담합 같은 경우 정부가 나설 수 있겠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세율을 묶는 방식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종량세 취지를 살리면서 물가연동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합리적이다. 예컨대 재정과 내수 여건을 봐가면서 국회 동의를 얻어 정부가 평균 3년 주기로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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