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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테라·루나사태, 판도라 상자 열리나… 권도형 체포에 숨죽인 주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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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의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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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조원에 이르는 투자 피해를 낳은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권씨가 국내로 송환돼 루나 사태의 전말이 밝혀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 동안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관련 혐의를 부인해 온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이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26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권씨는 지난 23일(현지시각) 몬테네그로의 공항에서 위조여권을 사용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출국하려다 적발돼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후 지금껏 해외에 머물며 도피 행각을 이어왔다.

법무부는 몬테네그로가 한국과 유럽연합(EU)이 맺은 범죄인 인도 협약의 대상 국가라는 점을 들어 권씨의 국내 송환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 권 찬양가 부르다 사태 터지자 ‘꼬리 자르기’

금융 당국과 가상자산 시장 관계자들은 권씨가 송환돼 테라·루나 사태의 전말에 대해 입을 열 경우 그와 함께 창업해 코인을 설계하고 유통한 관계자들은 물론 투자사, 거래소 등까지 새롭게 조사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껏 테라·루나 사태와 연관이 있다고 지목된 인물 대부분은 권씨와 오래전 인연을 끝냈거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은 권씨와 지난 2018년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 대표다. 차이코퍼레이션은 테라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결제시스템 ‘차이’를 운영하는 업체로, 권씨는 루나 가격이 폭락하기 직전인 지난해 5월까지 이 회사의 이사를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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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 대표(왼쪽)와 권도형 테라폼랩스 공동 대표. /테라폼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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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권씨와 관계가 깊은 신씨가 테라와 루나가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가격이 급등할 당시 코인을 팔아 1400억원대의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봤다. 앞서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검찰은 지난 20일 신씨를 재차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반면 신씨는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가 터진 후 줄곧 권씨와의 관계를 강하게 부인해 왔다. 자신은 2년 전 이미 권씨와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테라·루나의 문제점이나 폭락 가능성 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태가 발생하기 불과 2주 전 ‘신 의장의 분노에서 시작된 테라’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 직접 출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거짓 해명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가상자산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도 테라·루나 사태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개인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테라와 루나 코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왔다. 김 대표는 이 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한 한 유튜버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표 역시 테라·루나 사태 후 사법 당국의 수사가 시작되자, 돌연 권 대표와는 코인 개발자와 투자자의 관계였을 뿐이었다며, 자신도 거액의 손실을 본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루나 사태 관련 핵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신병 치료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한 바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권씨의 진술에 따라 추가 조사가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만약 테라와 루나 코인의 위험성을 미리 파악하고도 상장을 강행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1위 거래소 플랫폼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경우 자회사인 두나무앤파트너스가 과거 루나 코인 2000만개를 매입한 후 업비트가 상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매입 당시 가격이 127원이었던 루나의 가격이 7000원까지 오르자 두나무앤파트너스는 보유한 코인을 전량 매각해 1400억원의 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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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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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자산 관련 제도 미비, 처벌 어려울 수도

법조계와 금융 시장 일각에서는 권씨가 국내로 돌아와 입을 열어도 그를 비롯해 루나 사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여러 인물이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가상자산 시장에 적용할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아, 법원이 이들을 처벌할 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검찰은 권씨와 신현성 전 대표 등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테라와 루나 코인이 증권이 아니라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이들을 단죄할 만한 법적 근거가 취약해진다.

실제로 테라폼랩스 측은 지난해 9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루나는 증권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없음에도 한국 검찰이 부당하게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여러 가상화폐들에 대해 증권성 판단 여부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사법 당국은 현재 대다수 코인을 증권으로 보고 문제가 드러날 경우 처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가상자산 시장 관계자는 “검찰이 권씨와 루나 사태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인물을 법정에 세워도 이들은 그동안 쌓은 막대한 자산으로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응할 것”이라며 “법적인 처벌 근거도 취약한 상황이라 이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을 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진상훈 기자(caesar8199@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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