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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15년간 받은 돈 1200만원뿐…‘검정고무신’ 원작자 이우영 작가 유족 눈물로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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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 국회 기자회견서 “납치당한 '기영이' 유족에 돌려보내라” 형설앤에 저작권 반환·민사 소송 취하 촉구

재발 방지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요구

세계일보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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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싸우다 아주 멀리 떠난 형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 가져주고 귀 기울여주세요.”

만화 ‘검정고무신’ 원작자인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소송 와중 극단 선택을 하자 동생이자 검정고무신 공동 작가인 이우진 작가가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이같이 말했다.

유족은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문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과 소송을 벌이다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재발 방지와 저작권 반환을 촉구했다.

이 작가는 “(형설앤과 계약을 맺은) 2007년의 인연은 악연이 돼 형의 영혼까지 갉아먹었다”며 “어린 시절 만화를 사랑했고, 만화 이야기로 밤새우던 형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고 울먹였다.

그는 “형이 마지막에 걸었던, 받지 못했던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한다”며 “아마도 형이 마무리하지 못했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제자들의 창작활동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사업을 맡았던 형설앤 측이 이 작가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며 관련 사업과 소송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세대를 막론한 사랑을 받은 검정고무신을 그린 작가가 작품 저작권을 강탈당하고 그 괴로움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 만화·웹툰계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형설앤 측이) 캐릭터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납치당한 기영이와 그의 친구들을 유가족에게 돌려보내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검정고무신 관련 일체 권한을 유가족에게 돌려주고 (형설앤은) 모든 관련 사업에서 물러나고 민사 소송을 모두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형설앤 측은 2019년 이우영·우진 작가 등의 개별적인 창작활동을 문제 삼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책위 대변인을 맡은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들은 사실상 작품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작가들의 손과 발은 묶인 과정에서 '검정고무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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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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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 작가가 사실상 ‘막노동’에 준하는 업무를 수행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15년 동안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를 한 개수가 77개를 넘어가지만, 이우영 작가가 수령한 금액은 총 1200만원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사업자 측의 구체적 정산 내용은 현재까지 받지 못해 파악되지 않는다”며 “보상을 받는다 해도 정당한 근거가 필요한데, 어떤 정산을 따라서 어떤 비용이 누락된 것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추가 청구나 보상 요구를 위해서는 정산 절차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형설출판사 측에서 투명한 공개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우진 작가 딸 선민씨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막노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선민씨는 형설앤 측을 겨냥해 “그들은 창작시 점 하나 찍지 않았던 검정고무신을 본인들 것이라 우기며 평생을 바쳐 형제가 일궈온 작품이자 인생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검정고무신 창작자의 딸이라고 하면 으리으리한 건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냐고 묻는다”며 “그러나 아빠는 빼앗긴 저작권으로 아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 막노동일을 했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기우뚱거리는 집안의 무게는 저 또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빠를 힘들게 만들었고 아빠의 형이자 최고의 친구, 동료인 큰 아빠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작가와 가족들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앗아갔다”면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1990년대 인기 만화인 검정고무신은 이우영 작가가 대학생 시절부터 기획 및 집필했으며, 군 복무 기간에는 동생 이우진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글은 이영일 작가가 썼다.

이우영 작가는 형설앤과 수년에 걸친 저작권 분쟁을 하던 도중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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