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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차이잉원은 訪美, 마잉주는 訪中...대만 전·현 총통의 엇갈린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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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 중미 수교국 과테말라와 벨리즈 방문을 위해 타오위안 국제공항의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9박 10일 일정으로 중미 수교국들을 방문하는 계기에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할 예정이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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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잉주 전 대만 총통(대통령)의 중국 도착 이틀 뒤인 29일,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향해 떠났다. 대만 전·현직 총통이 내년 1월 대선을 앞두고 각각 방중과 방미를 선택한 것이다. 2008~2016년 집권했던 마잉주는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의 정신적 지주고, 2016년 총통에 올라 내년 5월 임기 종료를 앞둔 차이잉원은 반중(反中) 성향 민진당 소속이다. 대만 전·현직 총통의 엇갈린 행보는 대만 대선판이 친중(親中)과 친미(親美)의 대결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만 대선이 자국에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미중(美中)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차이잉원은 이날부터 열흘 동안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은 중미의 과테말라·벨리즈를 방문하며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찾게 된다. 29일 오후 3시(현지 시각) 뉴욕에 도착해 교민 만찬을 갖고, 이튿날엔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5일에는 대만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미 권력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만날 예정이다.

같은 기간 마잉주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의 밀착을 과시한다. ‘국민당을 선택하는 것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평화를 위한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신(新)국공합작이다. 중국은 마잉주가 자국에서 금기시되는 ‘중화민국(대만)’이란 표현을 쓰도록 하는 등 대만 입장을 대변하도록 배려하는 동시에 예우 수준을 제한하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다. 대만에 대한 호의는 보여주되 상하 관계는 확실히 하려는 의도다. 마잉주는 28일에는 난징 근교에 있는 대만 국부 쑨원(孫文)의 묘를 방문한 자리에서 ‘화평분투, 진흥중화(和平奮鬪, 振興中華·평화와 노력이 중화를 부흥시킨다)’라고 썼다. 의도적으로 평화를 많이 언급하며 ‘친중은 평화’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대만 전·현직 총통의 이번 행보는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차이잉원 입장에서는 미국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하다. 민진당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 3개월 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후 중국이 연일 대만에 군사 위협을 가하자 유권자들이 민진당의 ‘친미’ 기조에 불안감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왔다. 차이잉원의 반중 노선으로 인한 최대 교역 상대인 중국과의 무역 감소, 코로나 등에 따른 경제난 또한 민진당의 패배 요인이다. 이 여파로 차이잉원은 당 주석직에서 물러났고 내년 대선에서 민진당도 불리해졌다.

차이잉원은 이처럼 대만인들이 양안 긴장에 대해 느끼는 피로도가 커진 가운데 미국을 방문한다. 차이잉원은 ‘미국과의 관계를 지속 강화해 중국의 위협에 맞서 대만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방미 기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총통부는 이번 순방 주제를 ‘민주의 파트너, 공영(共榮)의 여행’이라고 이름했다.

미국과 중국에도 대만의 내년 선거 결과는 중요하다. 미중 대립이 점점 첨예해지는 상황에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 등이 있는 대만은 산업적 요충지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압박할 주요 카드로 대만을 쓰고 있어 친미 정당인 민진당이 이겨야 유리해진다.

과거 대만 대선을 돌아보면 대만인들의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인식이 선거 결과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쳐 왔다. 2016년 1월 집권한 차이잉원의 지지율은 2018년 말엔 20%대까지 곤두박질쳤지만, 홍콩·대만·신장 등에 대한 중국의 지나친 강경 노선에 국민 민심이 ‘반중’으로 기울며 친미인 차이잉원이 극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월 2일에 내놓은 ‘대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에서 무력 사용 배제하지 않은 통일 구상을 밝히고, 중국이 대만과 함께 ‘특별행정구’라고 부르는 홍콩에서의 강경한 시위 탄압도 계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차이잉원을 밀어준 꼴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대선 또한 민심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에 따라 결과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내년 선거에 나설 대만 양당 후보의 윤곽은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다. 민진당에선 라이칭더 부총통의 출마가 확정됐고, 국민당에선 지난 23일 경선 대신 특별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뽑기로 원칙을 정했다.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들은 주리룬 당 주석,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이다. 궈타이밍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그룹) 창립자 겸 전 회장은 내년 총통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서거나 국민당에 복귀해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그 또한 지난 27일부터 12일 체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중이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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