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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국 해상풍력 시장, 국내 기업 해외 진출 위해 빨리 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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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프론트라인]유태승 COP 코리아 공동대표 인터뷰

[편집자주]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 중간 목표 시점인 2030년을 앞두고 전세계 정부와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왜'에서 '어떻게'의 단계로 접어든 넷제로 추진은 에너지 전환, 산업, 수송, 건물 등의 전 방위적 변화를 수반합니다. 광범위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만큼 다양한 시각과 정보가 혼재합니다. 넷제로 달성과 관련해 가장 전방에 있는 각국 기업·기관의 인물들을 만나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인 달성 방법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려 합니다.

머니투데이

27일 유태승 COP(코펜하겐 오프쇼어 파트너스) 대표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한국은 바람이 약해서 해상풍력 발전이 어렵다?'

해상풍력은 국토의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재생에너지 발전원 중 하나로 꼽힌다. 동시에 자연환경 등을 이유로 한 회의론 역시 상존한다. 약 14년간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태승 COP(코펜하겐오프쇼어파트너스) 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해상풍력발전 잠재력을 다른 지역과 가장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27일 서울 COP 코리아 사무실에서 유 대표를 만나 '해상풍력 입지로서의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다른 지 들었다.

유 대표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을 거치며 한국은 물론 대만,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해상풍력 사업 개발을 경험했고, 현재 덴마크 해상풍력발전 개발사 COP의 한국 대표를 맡아 서남해 및 울산 지역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갖춘 제조업 공급망이 해상풍력 입지로서의 뚜렷한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해상풍력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내 해상풍력 시장이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해상풍력을 하기에 자연환경이 적합하지 않다는 통념이 있다. 한국은 물론 대만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하셨다. 해상풍력 입지의 관점에서 한국의 자연환경을 평가한다면.

▶ 한국은 풍속이 유럽의 북해나 대만처럼 굉장히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1~2년간 풍향 계측기로 측정한 결과 울산, 서해안 지역 먼바다는 8m/초 이상의 풍속이 나오는 걸 확인했다. 최적지는 풍속이 연평균 8.5m/초까지 나온다. 북해(약 10~11m/초)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한국의 바람이 해상풍력에 나쁜 편이 아니다. 더군다나 해상풍력 입지를 볼 때 자연환경 측면에서 풍속 외에 중요한 게 있다. 지질과 수심이다. 대만과 비교해보면, 대만은 바람이 세지만 바다의 수심이 깊고 해저 지반이 단단하지 않다. 실제로 한 개발업체가 대만에서 시공 하다 하부구조물이 지반 밑으로 빠져 소실되면서 큰 손해를 입었다. 반면 한국 해양의 수심은 상대적으로 더 얕고 지반은 단단하다. 지질과 수심 측면에서는 한국의 환경이 대만에 비해 유리하다.

-수심과 지반 특성이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설명해달라.

▶대만처럼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자켓' 형태의 하부구조물(풍력 발전기를 지지해주는 하단)을 써야 한다. 반면 한국 서남해 같은 (수심이 깊지 않은) 경우는 다른 형태의 하부구조물인 '모노파일'을 쓸 수 있다. 자켓형 하부구조물은 모노파일에 비해 최대 두 배 정도 비싸다. 즉 한국은 지반 특성 상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가는 하부구조물을 쓸 수 있다. 공사비가 더 적게 든다는 의미다. 공사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사업성은 더 좋아진다. 바람이 수익이고, 공사 비용을 지출이라 볼 때 수익이 많아도 지출이 더 많다면 안 좋은 사업이고, 수익은 좀 적어도 지출이 더 적으면 좋은 사업이 된다. 한국은 후자다.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다양한 업종이 참여하는 만큼, 해상풍력 사업 입지를 평가할 때 해당 국가 내 공급망도 중요해 보인다.

▶어떤 지역에서 해상풍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요인 중 환경적 측면과 함께 매우 중요한 부분이 해당 지역의 공급망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 가다. 앞서 말했듯, 바람이 수익이라면 지출은 공사비와 사업비인데 이 공사비를 결정 짓는 핵심 요인이 공급망이다. 하부구조물, 케이블, 설치부분 등의 BOP(Balance of Plant, 터빈을 제외한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필요한 구조물과 설비)의 모든 부분이 공급망에 포함된다. 한국은 이미 유관 산업들, 중공업, 철강, 조선 등을 포함한 공급망 저변이 굉장히 잘 구축돼 있다. 이는 해상풍력 단지를 지을 때 (구성 요소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조달할 수 있어) 공사비가 적게 든다는 걸 뜻한다. 대만에서는 정책적으로 지역화(역내 기업들로 공급망을 구축)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풍력 단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제한적이었다. 결국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 등 한국 기업들의 하부구조물을 대만으로 수입해 썼다.

-해상풍력 단지 건설에 필요한 공급망이 매우 크고 여러 단계에 걸쳐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의 각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인가.

▶ 외국 업체의 시각으로 볼 때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다. 하부구조물 분야에는 SK오션플랜트, 현대산업스틸, 세아제강 등이 있다. 세아제강은 이미 유럽에 진출해서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 LS케이블 역시 대만은 물론 유럽 시장에서 발판을 넓히고 있고, 심지어 초기 시장인 부유식 다이내믹 케이블 분야까지 진출했다. 대한전선도 해상풍력 쪽으로 분야를 확대해 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씨에스윈드 타워는 세계 1위고, 동국S&C, 윈앤피(유니슨 자회사) 등의 타워 업체도 있는데, 한국 시장이 성숙해진다면 한 업체가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면서 이런 업체들이 굉장히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여기에 이미 시공 실적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건설을 포함해 DL이앤씨, 삼성물산 등 EPC(설계·조달·시공) 분야의 잠재력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 더 저변의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갖고 있는 좋은 점들을 다 연결 하면 한국은 좋은 시장이 될 수 있다.

-한국 내 해상풍력이 확대될 때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들이 얻는 효과는.

▶ 한국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바라 봐야 하는 곳은 해외 시장이다. 해상풍력은 해외 시장의 규모가 거대하게 형성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 전세계 해상풍력 시장을 1000GW로 전망했다(2022년 해상풍력발전 누적용량은 약 55.7GW).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해상풍력을 더 확대하기로 했다. 유럽 시장도 다시 블루오션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하려면 트랙 레코드가 필요하다. 해상풍력은 트랙 레코드에 기반한 시장이다. 실적이 있는 기업만 진출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이런 트랙 레코드를 쌓으려면 다른 국가의 시장이 아니라 한국에서 해야 한다. 한국 시장이나 한국 정부가 지원해서 한국 기업들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기업들의 (기술 개발) 속도가 느린 분야는 외국 기업들과 제휴해서 빨리 기술을 습득하는 '실행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배울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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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와 금등리 앞바다에 위치한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사진 제공=탐라해상풍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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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자들의 한국 진출이 한국 기업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비소구 금융(non-recourse loan,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형태라 채권자가 사업의 위험도를 까다롭게 평가)을 일으켜 진행된다. 사업 구조가 잘 짜이고 위험도가 낮은 사업으로 평가돼야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이 것(투자자금 유치 획득)의 핵심은 큰 규모의 개발을 해 본 업체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경험이 많고, 기술적으로 검증된 터빈을 쓰는 지 여부 등의 트랙 레코드가 필요하다. 특히 터빈의 경우 기술을 쉽게 나눠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눠줄 수 있도록 정부나 한국의 시장 여건이 한국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 시장이 확대된다면, 해외 터빈사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바랄 것이고, 이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국내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전략을 선호할 것이다. 선진화된 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한국의 사업에 기여한다면 한국 기업의 기술도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30년(유럽 해상풍력 터빈사들이 현재 수준까지 기술력을 키운 기간)이 걸린다.

또 해상풍력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발 노하우다. 한국 업체가 사업성 있는 사업을 개발하는 걸 (해외 디벨로퍼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바람, 수심, 내부망 연계거리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최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기술을 습득을 해야 한다. (해외 디벨로퍼들이) 잘 안 주려고 하겠지만, 그 개발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한국 해상풍력 시장이 커지면)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에너지 전환뿐 아니라 거대한 글로벌 시장의 조기 진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상당한 규모의 경제를 이뤄 한국 공급망이 경쟁력을 갖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에서 사업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프로젝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파이프라인이 형성 돼야 공급망이 살아난다.

자본 측면에서도 국부유출이 아니다. 해상풍력 사업의 구조를 보면 그렇다. 한국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사업을 할 때는 국내 금융을 쓰는 게 상식이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본 중 타인자본 최대치를 80%라 할 때 이 타인자본을 국내 금융으로만 조달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화를 해야 경제성이 나온다. 유럽에서 1톤 규모의 하부구조물을 한국까지 실어 올 수 없다. 최대한 국내 기업들의 제품을 써야 한다. 대만은 쓰고 싶어도 (대만 제조업체들이 없어서) 쓸 수 없었는데, 한국은 이미 기라성 같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사업이 많아지면 기업들이 순간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국 기업들의 체계가 성숙해져 있다. 또 이런 투자 자금이 한국 기업들에게 투자돼 지역에서 일자리를 형성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구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

-대만이 해상풍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고, 일본, 베트남 등에 진출하는 해상풍력 글로벌 업체들이 늘어나는 등 아시아 국가들의 해상풍력 확대가 빨라지는 추세다.

▶한국 정부는 2010년에 해상풍력 계획(서남해 해상풍력 2.5GW 종합추진계획)을 세웠다. 빠른 출발이었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들이 더 앞서 있다. 대만은 2016년경 정책적으로 해상풍력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COP는 2017년 중반경 대만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했고, 다른 외국계 기업들도 2017년경 진입을 시작했다. 2015년만 해도 대만은 해상풍력을 하기 안 좋은 지역이었지만 그 이후 적극적인 정책을 하고 지역화를 추진해 한국을 앞서게 됐다. 베트남의 해상풍력 시장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등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베트남이 한국보다 해상풍력 분야에서 더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제도를 먼저 정비하고 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현재는 한국보다 느린 경향이 있으나, 제도완비 후 굉장히 가속을 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풍력에 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큰 위상을 과시하고 있고, 인도와 필리핀도 해상풍력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지금 14년째다. 우리가 먼저 시작했지만, 지금은 뒤쳐졌다. 다른 국가들이 빨리 치고 나가고 있어 (한국의 해상풍력 시장 확대가 늦어지면) 국제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고, 국내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그런 점이 우려된다.

-인프라 측면에서 한국이 해상풍력을 위해 준비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지금부터 고려해야 할 부분은 부족한 배후항만이다. 부두의 길이 등 해상풍력 단지를 짓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갖춘 항만이 필요하다. 한국이 배후항만을 잘 준비하면 일본, 대만, 더 나아가 아시아 지역의 허브가 될 잠재력이 있다. 덴마크 항구도시 에스비에르의 배후항만이 유럽 배후항만 수요의 약 50%를 담당하면서 지역의 일자리도 많이 창출했는데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COP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녹색분야 특화 자산운용사 CIP(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쳐파트너스)의 해상풍력 사업 개발을 전담하는 기업. 2012년 덴마크 국영 에너지사 동에너지(현 오스테드)의 해상풍력 사업 주축 멤버였던 야콥 폴슨 부사장 등이 덴마크 최대 연기금 '펜션 덴마크'와 함께 CIP를 설립했고, COP는 2015년 CIP 출신들이 설립한 해상풍력 개발사다. COP는 현재 CIP가 투자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전담해 개발·운영한다. CIP/COP가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해상풍력 사업 규모는 15개국에서 50GW 이상이다. 한국에선 전라남도 신안에서 SK E&S와 900MW 규모의 사업을 진행 중이고, CIP/COP 독자적으로 전라남도 신안·영광 지역 및 경상북도 울산 해역에서 기가와트급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태승 대표는

△2021.01 ~ COP 코리아 공동대표 △2018.8 ~ 2020. 12 COP 코리아 대표 △2011.11 ~2018.7 대림산업(현 DL 이앤씨) 해상풍력사업포함 글로벌 인프라 비즈니스 영업/육·해상풍력발전개발 및 EPC 사업 담당 △2010.4 ~ 2011.10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 선임연구원 (국가 풍력에너지 계획 총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기계공학 박사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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