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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초동시각]구름빵, 검정고무신,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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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 계약에 작가 권리 소외돼

저작권법 개정안 국회 표류 중

지난 11일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세상을 등졌다. 이 작가는 2019년부터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 형설앤 측과 수년째 저작권 소송을 벌여왔다. 유족에 따르면 이 작가는 원작자임에도 자신이 만든 검정고무신의 캐릭터를 쓰지 못하고, 2차적 저작물 관련 사업 진행에서 배제되는 현실에 대해 울분을 호소해왔다고 한다.

누군가 죽음으로 불의와 억울을 표현해야 잠깐이나마 이목이 쏠리고 뒤늦게나마 대책을 논할 기회가 마련되는 상황을 또 만나고야 말았다. 우리는 이렇게 한 명의 작가를 잃고 일명 ‘구름빵 보호법’이라는 별칭으로 지난 몇 년에 걸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돌아보게 됐다.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독자의 사랑도 받아 국내 40만부, 해외 8개국에서 50만부 이상 판매되고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부가가치를 4000억원 이상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저자는 2002년 한솔수북의 계약 때문에 계약금 850만원과 이후 전시지원금 등으로 10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그 이후 저작물을 이용해 얻은 추가적인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매절계약 때문이다. 백 작가는 '구름빵' 계약으로 입은 상처로 이후 7년간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고, 2017년 출판사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 반환 소송까지 냈으나 2020년 패소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백 작가는 '구름빵'에 이어 2012년 '장수탕 선녀님', 2017년 '알사탕'과 같은 성공적인 후속작을 냈다. 2020년에는 67개국 240명 후보를 제치고, '아동문학의 노벨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을 국내 최초로 수상하며 상금을 6억원가량 받은 덕에 소송비용을 해결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그동안 출판·공연업계에서 대중과 만날 기회를 얻기 위해 일회성 지급으로 계약을 맺은 작가 본인의 선택 아니냐는 주장에 맞서야 하고, 갑의 위치인 저작권 이용 업체 측이 작가에 제시하는 저작권 계약조건 자체의 일방적이고 불공정함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2015년 4월 저작권법 개정안, 일명 '구름빵 보호법'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발의된 이래, 2018년 11월 다시 발의됐지만, 법안소위에서 논의도 안 된 채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2020년 11월, 2021년 1월, 지난해 9월에도 거듭 저작권법 개정안은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0일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총 1만4546건이고, 이 중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발의·계류된 법안은 모두 30건이다. 개정안 중에는 창작자가 저작권을 이용자에 넘겼더라도 양도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큰 수익이 나면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첨예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중 과연 몇 건이나 자동폐기되지 않고 빛을 볼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도 뒤늦게 지난 15일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공정 계약을 막기 위해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내용을 명시하고, 3자 계약 시 사전동의 의무 규정을 포함하는 등의 장치 마련에 나섰다. 구름빵보호법에서, 구름빵·검정고무신보호법이 된 저작권법 개정안. 부디 구름빵, 검정고무신 다음에 다른 작품이 추가되지 않길 기대한다.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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