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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WEEKLY BIZ] 은행 파산, 2008년엔 잠잠해졌다 다시 위기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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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금융 위기와 차이점은?

조선일보

스위스 베른에 있는 크레디스위스 은행 지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거물인 크레디스위스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UBS에 매각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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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와 시그니처뱅크 파산에 이어 글로벌 투자은행(IB) 거물인 크레디스위스(CS)마저 매각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데자뷔(deja vu)처럼 가물거리고 있다. 미국·스위스 정부가 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도이체방크 등 후속 주자들이 거론되며 대형 위기의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15년 간격을 두고 벌어진 2008년과 2023년 위기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WEEKLY BIZ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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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탐욕’이 부른 위기

CS가 파산 직전 UBS에 인수된 것을 놓고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매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당시 대형 투자은행이던 베어스턴스가 파산 위기에 몰리자 JP모건이 연방준비제도(Fed) 지원하에 소방수로 나서 베어스턴스를 흡수 합병했다. 위기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확산됐으나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대혼란이 펼쳐졌다.

‘제2의 리먼’이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JP모건이 소방수로 나섰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번에도 JP모건은 미국 11개 주요 은행과 함께 파산 위기설이 돈 퍼스트리퍼블릭(FRC)에 300억달러 예금을 예치하며 위기 진화에 나섰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도 재등장했다. 2008년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각각 50억달러를 투자해 구원투수 노릇을 했던 버핏 회장은 이번에도 미 정부 및 금융사 CEO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와 2008년 위기 모두 금융회사의 오판과 탐욕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2001~2007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액이 60% 넘게 급증하자 금융회사들은 소득과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닌자론)을 해줬다. 당장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변동 금리형 상품(ARMs)을 판매했다. 그 뒤 월가는 저신용·저소득자 대상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을 정교한 MBS 상품으로 포장해 안전 자산인 양 사고팔았다. 금융회사들은 집값이 1990년대 후반 이후 10여 년간 특별한 조정 없이 급등세를 보이자 지나친 낙관론을 갖게 됐고, MBS가 위기의 진앙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07년 시티그룹의 척 프린스 최고경영자(CEO)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은 일어나서 계속 춤을 춰야 한다”며 월가의 광기(狂氣)어린 투자를 옹호했다.

이번에도 금융회사들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다 줄줄이 파산 위기를 맞았다. SVB는 자산의 55%를 MBS와 미 국채 등에 투자했다가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직격탄을 맞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과 가파른 금리 인상이 예상됐는데도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지 않고 버티다 위기를 맞은 것이다. 언제든 돈을 내줘야 하는 요구불예금 비율(66%)을 높게 유지한 것도 SVB의 재정 취약성을 높이는 요소였다. SVB·시그니처 외에 코메리카·자이온스 등의 미국 내 다른 중소형 은행도 요구불예금이 많고, 자산 중 채권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연쇄 파산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적 투자를 벌이다 큰 손실을 입었다는 점에서 CS 역시 탐욕으로 무너진 금융 위기 때의 투자은행들을 빼다 박았다. CS는 2021년 3월 영국 그린실캐피털 파산과 같은 해 4월 아케고스캐피털 파산이라는 투자 실패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CS가 그린실·아케고스 파산으로 날린 돈은 2020년 순이익의 2.5배가 넘는 72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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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식 위기 확률 낮아”

많은 은행이 연쇄적으로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번 사태가 2008년식의 ‘금융 대공황’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아직까지 우세하다. 본격적인 신용 위기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시장의 신용 경색 수준을 나타내는 TED스프레드이다. TED 스프레드는 3개월 미 국채 수익률과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간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비율이 커지면 은행들이 미국 정부로부터는 돈을 더 빌리려 하지만 다른 은행에 빌려주기는 꺼린다는 뜻이다. 지난 26일 기준 TED 스프레드는 0.49%포인트인데, 금융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07년 9월에는 2.0%포인트에 달해 위기의 전조가 뚜렷하게 나타난 바 있다.

신용 위험을 나타내는 하이일드 스프레드(투기 등급 이하 채권 수익률에서 국채 수익률을 차감한 지표) 역시 SVB 사태 이후 2주간 1.17%포인트 상승한 5.15%포인트를 기록 중이지만,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8.21%포인트)보다는 3%포인트 이상 낮다. 2008년 최고점(19.9%포인트)과 비교하면 아직 4분의 1수준에 머물러 있다.

은행들의 금융 건전성이나 유동성 여건도 2008년과 비교하면 훨씬 양호한 편이다. 2008년 이후 금융 당국이 규제를 강화한 덕에 주요 금융회사들의 핵심자기자본비율(Tier1)은 2008년 7.4%에서 현재 14.9%로, 유동성 자산 비율은 6%에서 19%로 크게 높아진 상태다. 신한투자증권 하건형 연구원은 “최근 시장 금리 급등에도 모기지 연체율은 3~4%대에서 움직이고 있고, 대출을 갚지 못해 압류당한 비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향배에 따라 신용 위험과 뱅크런이 재현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인플레이션으로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침체 신호에 불이 켜지면서 부채가 한순간에 시한폭탄이 되는 시나리오다. 이미 G20(주요 20국) 경기선행지수(CLI)는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고 2009년 7월(98.2) 이후 14년여 만에 최저치를 찍었을 만큼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사태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파른 금리 인상 국면에서 이런 식의 위기가 마지막일 수는 없다”며 “신용위기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철저한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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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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