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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미술로 보는 세상] 사라진 미녀, 되찾은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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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다른 예술과 달리 미술 작품은 실체이고 물질이기 때문에 '도난' 문제에 밀접하다.

미술작품 도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1년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이다. 절도의 과정(매우 허술하고 간단했다), 목적(훔친 자가 이탈리아인으로 '애국'을 내세웠다), 뒷이야기(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받았다) 등 모든 면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모나리자'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경우는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 도난 사건이다.

'절규'는 총 다섯 버전이 있는데, 그중 노르웨이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소장된 '절규'가 각각 1994년, 2004년 탈취당했다가 돌아왔다.

여기서 소개할 도난 그림의 주인공은 두 미녀다.

먼저 18세기 영국의 초상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가 그린 '데번셔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초상화'(1785)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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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번셔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초상화'
채스워스 하우스 소장


조지아나는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당대 최고의 미녀였다. 그녀의 사랑과 몰락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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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2008)


살짝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는 눈매와 손의 자세에서 당당함을 넘어 오만함이 느껴진다. 검정의 큰 모자와 꽃 한 송이가 이를 강조해 준다.

이 그림은 비공개로 보관되다 1876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 지 며칠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후에 밝혀진 도둑은 금고 털이범 애덤 워스였다.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이 그림을 훔친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동생 석방의 협상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상도 벌이기 전 동생은 자유의 몸이 됐다.

그 후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 워스는 이 그림을 팔지도, 폐기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돌려주지도 않고 자신의 곁에 뒀다. 생활 속 벗이자 애인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침실이나 창고에 보관했다. 심지어 여행할 때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무려 25년이 지난 뒤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그림을 넘겨줬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매우 아꼈으며, 그림 속 여인을 사랑했던 것이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는 대부분 매력적이지만, 조지아나의 풍모에서는 매력을 넘어 마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살아서 사교계를 흔들었고, 죽어서도 세상을 매혹했다. 그리고 25년 동안 한 남자만의 사랑을 얻었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그린 여인도 수난을 당했다.'안토니아 사라테의 초상'(1905년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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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아 사라테의 초상'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소장


고야는 자신과 염문을 뿌린 '알바 공작 부인'과 불명의 여성을 그린 '옷 벗은 마하','옷 입은 마하','파라솔' 등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다수 그렸다. 사라테는 연극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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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 (1798~1805)
프라도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 '러스보로 하우스'에서 보관되던 중 1974년 페르메이르, 고야, 벨라스케스, 루벤스 등의 명작과 함께 도난당했다. 무려 열아홉 점이나 털렸다. 도난의 이유는 정치적이었다. 아일랜드 독립단체인 IRA 요원들을 석방하라는 것.

얼마 후 회수됐을 때는 싸구려 포스터처럼 쓰레기봉투에 담겨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심한 손상이 없었던 덕에 다시 그녀의 눈길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뛰어난 미녀는 아니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사라테의 눈길에 빠져들면 쉽사리 헤어나기 힘들다. 코와 입, 목선 등과 조화를 이룬 그녀의 눈매를 콕 집어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우울하기도, 포근하기도, 슬프기도 한 복합적인 눈길이기 때문이다.

여러 감성을 동시에 일으키는 이유는 아무래도 검정 드레스 때문인 것 같다.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가 그린 '미지의 여인'(1883)처럼 검정은 보통 '공포'나 '죽음','권위'를 상징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유혹적이다. 이미지의 감성을 북돋우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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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여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데생이나 색채의 기교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초상화에서 깊은 속내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화가의 능력이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림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초상화를 감상하는 일이다. 화가와 시대와 계급, 성(性)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지의 여인'에서도 느껴지긴 하지만, 도난당한 후 되찾았다는 이유 때문인지 조지아나와 사라테의 눈길에는 '호소의 마력'이 보태져 있는 듯하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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