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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사무실 막내가 화분에 물 주면 직장 내 갑질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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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직장이 가장 비민주적" 응답 많아

"반려동물 아픈데 휴가 안내준다"

최근 고민상담 사례 점차 늘고있어

직장 괴롭힘 당할때 증거 확보 중요

자책만 말고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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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승진’ ‘축 영전’ 등이 쓰인 화분이 회사에 배달된다. 화분 주인은 화분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긴다. 이제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은 사무실 막내의 몫이 된다. 막내가 문제 제기를 하면 이 사안은 화분 주인의 직장 내 갑질에 해당하고 화분 주인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상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오진호(사진)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사무실에 있는 화분을 누가 관리하는지만 봐도 직장 갑질 여부를 알 수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많이 고쳐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직장 갑질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2차 회식 강요가 직장 갑질이라는 것은 이제 대부분 안다. 하지만 1차 회식도 자주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오 위원장은 “폭탄주라도 한 잔 돌리면서 직원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조직 성과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대개 회식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속으로 ‘술을 마시고 싶으면 어르신들끼리 하시죠’라고 말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직장갑질119는 노동법 위반, 괴롭힘 등 직장인들이 겪는 다양한 갑질 사례를 상담하고 해결책을 조언하는 민간 공익단체다. 다수 국민이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2017년 일단의 노동단체 활동가와 노무사·변호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비민주적인 일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직장이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지금도 낮지만 당시에는 더 낮아 10%에 불과했다. 90%의 직장인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편하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들어 문제를 해결할 공간이 필요했다.

직장갑질119에는 현재 18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장 갑질 피해자들의 상담에 응하고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1400여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면 되며 e메일로 신청하면 구체적인 개별 상담이 가능하다.

요즘에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고민을 상담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반려동물이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상사가 휴가를 받아주지 않는다. 반려동물이 죽어 장례를 치르고 추모할 시간이 필요한데 회사가 경조사 휴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휴가 결재자는 이럴 때 “요새 애들 정말 너무하네”라고 할 수 있지만 휴가 신청자는 내 목숨과도 같은 가족을 무시하는 처사로 받아들인다.

오 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강조했다. 상담 사례 대부분에서 쟁점은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의 여부이고 이때 가해자는 발뺌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피해자는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회사는 자진 퇴사라고 반박할 때 필요한 것은 증거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자신이 사회생활을 잘 못한다거나 업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자책하는 경우가 많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자책 대신 주위에 고민을 얘기하고 증거를 확보해 문제 제기를 하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한기석 선임기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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