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순례길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15일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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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9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오전 안산 단원구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세 명이 길을 걸었다. 16명의 대학생이 뒤를 따랐다. 학생들은 “참사 직후 6년은 농성으로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탄식을, “시민들이 함께 해준 덕에 정부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는 말에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걸은 길의 이름은 ‘기억순례길’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등하교하면서 자주 이용한 길이다. 세월호참사유가족협의회는 이 길을 시민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만 50여 곳의 단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고 권지혜양 어머니 이정숙씨(58)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젊은 층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단체 참가자의 50% 정도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고 했다.
2024년 완공예정이던 안산 생명안전공원, 지역주민 반대, 예산 확보 난항에 착공도 못해
15일에는 춘천 역사연합동아리 ‘날갯짓’ 소속 대학생이 참가했다. 이해원씨(30)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군 복무 중이어서 참사의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뉴스를 보고 ‘큰 사고가 났다’고만 생각했다. 2017년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참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았다. 이씨는 2021년부터 매년 순례길 동행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올해에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와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며 “희생자들의 대한 연민을 넘어 함께 연대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동행은 오후 1시 화랑유원지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시작됐다. 생명안전공원 부지는 단원구청 맞은편에 위치한 23000㎡(약 7000평) 넓이의 공터다. 정부는 2019년 이곳에 추모공간과 문화편의시설을 갖춘 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참가자들이 화랑유원지 옆에 있는 생명안전공원 부지를 걷고 있다. 정부는 2019년 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했다. 김세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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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롭게 진행되던 추모공원 건립사업은 일부 지역주민이 “왜 도시 중심에 추모공원을 짓느냐”며 반발하면서 삐걱댔다. 총사업비를 놓고 안산시와 기획재정부의 협의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완공 시기는 2024년에서 2026년으로 미뤄졌다.
이날 화랑유원지 주변 곳곳에는 ‘화랑유원지 세월호 추모시설 건립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확성기로 ‘도시 중심에 납골당이 웬 말이냐’라며 항의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공원 부지에는 풀만 무성했다.
고 신호성군 어머니 정부자씨(54)는 “생명안전공원은 시민들이 365일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리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공간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이랑씨(21)는 “유가족들이 생명안전공원을 ‘청소년들이 꿈과 끼를 찾을 수는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납골당을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주 찾던 건물은 ‘기억저장소’로 탈바꿈···참사 당시 교실 복원한 ‘기억교실’도
참가자들은 1km 가량 떨어진 단원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 앞에서 바라본 단원고는 여느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오르막길을 올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세월호 추모 조형물인 ‘노란 고래의 꿈’이 보였다. 지난해에는 조형물 뒤쪽에 ‘노란 우체통’이 설치됐다. 유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편지로 적어 넣을 수 있다. 편지는 4·16기억저장소에 보관된다.
4·16기억저장소는 안산 고잔동 골목길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있다. 희생자들은 건물 2층에 있는 PC방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기억저장소에는 지난 3월부터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기억시’가 전시되고 있다. 천장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기억물품이 걸려있다. 강지현씨(20)는 “천장에 달린 희생자들의 사진, 명찰 등을 보면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곱씹었다”며 “앞으로 유가족들이 만들어갈 10년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416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기억저장소 천장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추모물품이 담긴 상자가 걸려있었다. 김세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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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의 마지막 장소는 4·16기억교실이었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맞은편에 있다. 참사 당시 단원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취지로 2021년 개원했다. 건물 2층에는 2학년 1반부터 6반, 3층에는 7반부터 10반이 있다. 단원고 학생들이 지내던 교실의 창문틀, 칠판, 책상 등을 그대로 옮겨왔다.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사진과 방명록을 적을 수 있는 노트가 놓여 있다. 교실 앞 칠판에는 ‘oo아 보고 싶다’ ‘사랑한다’와 같은 문구가 가득 적혀 있었다.
4·16기억교실은 2021년 12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됐다. 국가지정기록물은 민간기록물 중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주요기록물이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물 등재를 준비 중이다. 기억교실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언젠가 세상을 뜨더라도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게 하기 위해 등재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윤민재씨(20)는 “직접 현장에 와서 보니 뉴스로만 접했을 때는 먼 이야기 같았던 참사가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유가족분이 ‘기억하겠습니다’보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신다고 해서 기억교실에도 그 문구를 적어놓고 왔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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