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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심층기획] 넷플릭스는 K-콘텐츠를 어떻게 길들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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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최지예 기자]
텐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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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넷플릭스 마음이죠. 넷플릭스 영향력은 커지는데, 우리 콘텐츠 제작업체들은 점점 납품업체가 돼가고 있어요"

대표적인 OTT업체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K-콘텐츠 업체들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건 긍정적이지만, OTT 플랫폼에 종속되면서 사실상 콘텐츠 납품 업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OTT의 달콤한 유혹

11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최근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 등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맡고 있는 기업들은 최근 쌓여있는 영화 처리 방식을 놓고 고민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에 상영못한 한국 영화들을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같은 OTT업체에 팔아야 하는지 따져보는 중이다.

실제 이 회사가 들고 있던 몇 개 작품은 제작비의 120~130% 가량을 받는 계약 형태로 한 OTT에 팔아 넘겼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오리지널(넷플릭스 독점 콘텐츠) 콘텐츠로 영화를 넘기면 제작비의 10~20%정도는 수익으로 낼 수 있다"고 말했다. OTT는 콘텐츠 실패에 따른 위험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비교적 싼 값에 콘텐츠를 살 수 있고, 콘텐츠 제작·배급사는 실패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계약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제작 투자에 돈이 말라버린 국내 시장으로서는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장미의 숨겨진 가시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넷플릭스도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니다. 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그 이상의 권리를 톡톡히 챙긴다. 콘텐츠의 핵심인 IP(지식재산권)을 100% 확보함으로서 콘텐츠가 대박을 터트리는 데 따른 고부가 가치는 넷플릭스가 챙길 수 있다.

'오징어게임'으로 대박을 터트렸지만, 제작사가 그 자체로는 큰 돈을 받지 못한 것도 하나의 사례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을 2140만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환율로 대략 250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 제작사 수익은 약 50억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넷플릭스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시청자수에 따른 넷플릭스의 예상 수익은 8억9110만달러로 1조원을 넘겼다.

IP를 확보하게 되면 해당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짐으로써 어마어마한 추가 수익을 누릴 수 있다. 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고, 출판, 캐릭터 사업, 굿즈 제작 등 확대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파워 있는 IP의 잠재적 가치는 투자금의 수배, 수십배가 될 수도 있다. IP 주인장인 OTT 업체는 제 뜻대로 작품을 활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텐아시아에 "해당 콘텐츠의 판매나 재가공 등 모든 권리는 넷플릭스 마음대로다. 작품의 IP를 넷플릭스가 100%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작품 공개 후 흥행에 성공해 대박이 터지더라도 추가 수익 분배는 없는 게 대부분 초기 계약 조건"이라고 전했다.

◆10% 미만인 K-콘텐츠 수익성

단기적으로는 넷플릭스 같은 거대 OTT의 한국 콘텐츠 투자가 긍정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OTT 의존도가 심화될 수록 K-콘텐츠 업계의 수익성은 제조업 수익성인 10% 초반대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국내 콘텐츠 제작·배급사 수익성에도 이 같은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은 2020년부터 3년간 영업이익률이 10% 언저리다. 올해 영업이익률 전망치도 10%다. 에이스토리도 10% 초반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배급사인 NEW는 지난해 4.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경쟁사인 쇼박스는 적자를 냈다.

산업 성장성은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거나 수익률이 높아지는 형태로 평가받는데, 숫자로 보자면 K-콘텐츠의 성장성이 높아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주식시장에서 넷플릭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8배로 높은 반면, K-콘텐츠株는 상대적으로 낮은 PER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영업이익률 10%는 업계의 수익성 마지노선처럼 여겨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급해 본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은 제작사의 수익은 평균 투자금의 10% 수준이다"며 "최근엔 그마저도 수익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이러다보니 콘텐츠 업계에서는 OTT들이 콘텐츠에 투자해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두리 양식'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막대한 자본의 돈줄을 주고 있는 넷플릭스가 우리 콘텐츠 시장을 하청 업체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며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우리 콘텐츠의 가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걱정을 쏟아냈다.

◆전문가들 "IP 확보해야"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OTT와의 계약 단계에서부터 IP를 확보하는 업계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회의원들 주최로 열린 '넷플릭스 한국투자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산업계 우려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토론자인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넷플릭스 투자는 좋은 계기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IP 자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IP를 확보할 수 있는 요인을 충분히 주고 넷플릭스와 계약을 해야 하고, 투자를 받을 때도 국내 사업자가 IP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도 "K-콘텐츠가 하청화되지 않으려면 IP 협상력이 중요하다"면서 "IP 확보가 제작 단계에서만 지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IP확보를 위한 필요 이상의 규제가 오히려 국내 OTT 사업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토론자들이 제기했다. 허승 왓챠 이사는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가 현재로선 동등하지 않고 넷플릭스에만 열려 있다"면서 "기존 내수시장 중심으로 설계된 미디어·콘텐츠 틀을 글로벌 밸류체인 형태로 바꿔 K-콘텐츠 산업 발전의 지속 가능성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 콘텐츠 시장을 '동반자'라고 표현했다. 동반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짝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이다. 넷플릭스가 동반자인지, 아니면 K콘텐츠의 알맹이를 저렴한 값에 쏙쏙 빼가는 포식자에 가까운지는 지켜볼 일이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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