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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끝나지 않는 스토킹… 접근금지 명령에도 변호인 통해 ‘변칙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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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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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보람(30·가명)씨는 지난달 초 전 연인 박모(32)씨를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처음부터 고소할 생각은 아니었다. 박씨가 헤어진 후 연락도 없이 두 차례 집을 찾아왔을 때는 타일러 돌려보냈고 수십 차례의 전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쪽지에도 응답하지 않고 확고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늦은 밤 박씨가 세 번째로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자 자신은 물론 같이 사는 여동생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경찰을 찾았다.

경찰의 잠정조치 신청으로 박씨에겐 서면 경고와 함께 이씨와 이씨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씨는 안도감을 가졌으나 이는 착각이었다. 박씨가 선임한 변호인이 연락하기 시작했다. ‘박씨가 미안하다는 뜻을 밝힌다. 용서해 달라. 고소를 취하해 주길 원한다’는 취지의 연락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14일 “더는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서 “박씨 소식을 듣는 게 힘들어 고소했는데 계속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으로 재발 우려가 있는 가해자에게는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제3자 또는 변호인을 통한 ‘꼼수 접촉’을 막을 수 없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킹 처벌법을 보면 서면경고(1호), 접근금지(2·3호), 유치장·구치소 유치(4호)로 구성된 잠정조치는 ‘스토킹 행위자’를 대상으로 한다. 경찰 관계자는 “잠정조치 처분은 개인에게 내려지는 것으로 변호인 접촉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선) 변호사를 다시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관련 신고가 크게 늘면서 잠정조치 건수 역시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잠정조치 건수(법원 결정 기준)는 5896건으로 집계됐다. 올 1~3월에도 1723건의 잠정조치가 내려졌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자에게 변호인이 있으면 변호인에게 해당 잠정조치를 한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변호인이 피해자를 접촉하는 것에 대해선 따로 규정이 없다. 경찰도 지난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살해된 사건 이후 유치장 유치 등 잠정조치를 적극 활용하도록 했지만 잠정조치를 무력화하는 이러한 시도에 대한 대처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잠정조치 자체가 무력한 상황으로 변호사의 연락은 본인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법조계가 아직 스토킹 범죄의 본질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의 존재 자체가 두려운 범죄이기에 가해자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 신고가 많아지면서 대형 로펌을 찾는 가해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피해자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토킹 범죄 피해자는 국선변호인이 지원되지 않아 가해자가 선임한 변호사를 피해자가 직접 대응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장애인 학대와 아동학대, 성폭력 범죄에 국한해 지원하는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스토킹 범죄까지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중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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