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연합시론] 데이트폭력 신고에 또 보복살인, 피해자 보호 최우선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합뉴스

데이트폭력 조사 받고 애인 살해…용의자 긴급체포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기자 =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A 씨가 26일 오후 경찰에 긴급체포된 후 서울 금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2023.5.26 ysc@yna.co.kr


(서울=연합뉴스) 데이트폭력을 신고한 여성이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귀가 조처된 지 몇 분 만에 가해 남성한테 살해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임의동행해 조사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등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법과 제도의 미비점이 진작에 보완되고,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 안타까움이 더한다. 경찰에 따르면 살인 피의자 김모(33)씨는 26일 새벽 헤어지자는 피해자 A(47)씨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다 오전 5시37분께 A씨의 데이트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따라 근처 지구대에서 조사받고 오전 6시11분께 풀려났다. A씨도 1시간쯤 뒤인 오전 7시7분께 피해자 조사를 받고 나왔으나 오전 7시17분께 서울의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씨에게 변을 당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씨는 경찰에서 신고한 데 화가 나 범행했다며 혐의를 전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트폭력 사건 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보복 살인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경찰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 발생 직전 데이트폭력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두 사람을 지구대에서 조사하고서도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과 달리 단순 데이트폭력의 경우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등 조치를 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찰이 단순 연인 간의 폭력행위로 판단한 근거는 이렇다. 통상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자체적으로 마련한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통해 위험성을 판단하는데, 여기서 보복 위험성이 높지 않은 사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결혼 의사가 없는 연인 관계다.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피해자 진술도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판단했을 경우에는 가정폭력처벌법상 100m 이내 접근 금지 조처를 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매뉴얼에 따라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데이트폭력 발생 시점을 전후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경찰의 판단이 적절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로 범행을 막았다면 좋았겠지만, 현장 경찰의 피해자 진술을 통한 위험성 판단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데이트폭력을 신고한 피해자가 신고 몇분 만에 또다시 보복살인의 피해자가 되는 참극을 불렀다. 일선 경찰의 애로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사건마다 제각각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매번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처리 매뉴얼도 만들었을 것이다. 이번에 경찰의 한 판단 근거로 쓰인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도 이참에 그 적절성을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찰은 이달 22일부터 개선한 체크리스트를 이번 사건에도 활용했지만 현장에선 소용이 없었다. 경찰청은 체크리스트 개선 당시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 위험성에 대한 문항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문항 수를 기존 16개에서 28개로 늘리고, 이 가운데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의 판단 문항을 10개 포함했지만,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데이트폭력 사건도 스토킹 범죄처럼 신고 단계에서부터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실효성이 있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하겠다. 일선에서 여러 요인과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방법이 가장 적절한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서둘러 개선하기 바란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