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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대장암' 80대 노모 두고 40대 아들은 게임만…"눈 감는 게"[가족간병의 굴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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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실려 응급실 가도 '무관심'…"아들 존재는 비밀로 해줘"

'가족 책임' 치부…가족 외면시 방법 없는 간병 체계 개선 필요

[편집자주] 파킨슨병 환자인 80대 남성이 자신을 간병하던 70대 아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아내는 간병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40대 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의 아버지 간병을 맡겨 미안하다"는 이유로.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에서 '가족간병의 굴레'는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뉴스1>은 간병가족을 직접 만나 복지 사각지대 실태를 점검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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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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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오늘도 아들의 방문은 닫혀 있다. 이순자씨(가명·81)가 살며시 방문을 열자 안에 있던 40대 아들 김민호씨(가명)가 문에 발길질한다. '쾅' 소리를 내며 방문은 어김없이 닫힌다. 모자 사이는 고작 한두 걸음이면 만날 거리지만 영영 닿지 못할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간병 필요한데 아들 방 닫힌 문만 바라보는 노모

이씨는 2014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최근엔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각종 질환까지 떠안고 있다. 지난해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아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만이 또렷할 뿐이다. 이씨에게 필요한 사람은 간병인인데, 그는 아들 민호씨 방의 닫힌 문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채 서울의 한 영구 임대 주택에서 민호씨와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나온 사회복지사를 따라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50㎡(약 15평) 집안에서 민호씨는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고, 이씨는 그런 아들을 걱정하고 있다.

24일 거주지에서 만난 이씨는 "자다가 이대로 눈 감는 게 아들에게 그나마 짐을 덜어주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래 살면 뭐하나. 남아 있는 아들한테 짐만 될 뿐이지. 매일 먹는 약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결혼 13년 만인 마흔 살에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민호씨를 뱃속에 품던 날 이씨는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2세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민호를 임신한 소식을 들었으니 기적 아니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30여 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아들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축구도 잘하고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리던 민호씨는 그때부터 자신과 게임 외 모든 것에 거리를 뒀다.

그가 20대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이씨는 말하길 피했다.

◇이씨가 아들의 존재를 숨기는 이유

이씨는 척추 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매번 화장실을 오가기 힘들다. 두어 달 전엔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다녀왔다. 그런 순간에도 아들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민호씨가 아픈 노모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기적'은 이뤄지기 힘든 걸까.

"남편과 이혼 후 민호가 말은 못 해도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다. 그런 아들한테 아픈 어미 간병해 달라고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겠나. 아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충분히 못난 어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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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주민등록상 65세 이상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으로 분류돼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됐다. 그 덕분에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 약 7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주민등록상 아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독거노인' 지원금은 박탈당한다.

이씨가 아들의 존재를 주변에 꼭꼭 숨기는 이유다. 이씨는 "아들을 아들이 아닌 조카로 주변에 소개하고 있다"며 "아들 있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원금이 사라지면 이씨뿐 아니라 민호씨의 삶도 힘들어진다. 아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을 '조카'라 하고 여생을 살아야 한다.

민호씨의 폭행으로 온 몸에 멍이 새겨지고, 그의 욕설로 마음에 피멍이 들었어도 신고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씨는 아들의 존재가 발각돼 지원금이 끊기는 것이 맞는 것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아들이 지금은 저렇게 문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작년엔 툭하면 발로 여기저기 차서 몸에 멍이 들었다. 소리지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욕도 하고……"

◇"정부·지자체 차원서 통합적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이씨의 사례와 관련해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간병을 관리하지 않고 가족 간 일로 치부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고독사 우려까지 있는 이씨가 복지 사각지대에서 무관심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가족이 무관심하다면 중증 간병 대상자라도 방치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가 가파르게 늙고 있어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2019년 65세 이상 노년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이미 진입했다. 지난해 노년인구가 900만명을 돌파했으며, 2025년 노년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부담으로 발생하는 이른바 '간병 파산', 오랜 간병 생활의 극단적인 부작용인 '간병 살인'(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숨지게 하는 것)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의 안전망에 적신호가 들어와 있다.

이은영 동국대학교 법학박사·전연규 용인대학교 경찰학 박사수료생은 지난해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한 논문 '간병살인 범죄의 특징과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 사회에는 간병이라는 틀이 주로 가족 당사자에게 한정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회문제로 보기보다 가족 내 해결해야 할 부양의 문제로만 인식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이가 들거나 중증 질병을 얻은 가족에 대한 부양의 문제는 간병케어 시스템(체계)의 미비로 인해 극한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가정이 아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스템을 통합해 간병 지원을 관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간병해야 하는 노인이 지역 사회 내 몇 명이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요양병원 등 시설에 입원하지 않고 간병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한 촘촘하고 집중적인 간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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