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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영에 '경'자도 모르던 직원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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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2017년 12월 15일, 국내 상장사 중 처음으로 직원들이 대주주인 기업이 등장했다. 한국종합기술이다. 당시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유동성 위기로 인해 매물로 내놨는데, "다른 데 팔려가느니 직접 주인이 되자"며 직원들이 힘을 합해 매입한 거다. 이후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던 이 회사는 잘 굴러가고 있을까. 직원들이 직접 뽑은 제3대 사장, 김치헌(60) 한국종합기술 사장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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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헌 사장은 실적이 꾸준해야 직원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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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오너와 그 직원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힘들다. 생각이 달라서다. 현실에서 오너가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을 찾거나 직원들이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오너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종합엔지니어링업체 한국종합기술에선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회사의 오너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친 직원들이어서다. 직원들이 지주사인 한국종합기술홀딩스를 통해 한국종합기술 주식의 52.96%를 소유하고 있다. 2017년 12월(최종 인수계약 완료 기준) 국내 상장사 최초로 종업원 지주회사를 선언한 한국종합기술은 숱한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중 대표적인 건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직원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란 폄훼적 우려였다. 당시 더스쿠프가 이 회사의 변신을 전하면서 몇년 후의 모습을 다시 다뤄보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 올해로 딱 5년치의 실적보고서를 내놓은 이 회사의 현주소는 어떨까. 무엇보다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종업원 지주회사로 변신한 2017년 영업적자가 73억원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2017년 1241명이던 직원 수는 지난해 1617명으로 30.3% 늘었고, 직원 1인당 평균연봉은 같은 기간 5882만원에서 7286만원으로 23.9% 증가했다.

주식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2017년 9월 초 6000원 후반에서 7000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직원들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2000원 후반대까지 떨어졌지만 지금은 7000원 초반대까지 회복했다. 시장의 우려를 털어냈다는 얘기다.

김치헌 한국종합기술 사장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참고: 이 회사의 사장은 직원들이 직접 뽑는다. 김치헌 사장은 직원들이 세번째로 직접 뽑은 사장으로 지난해 1월 취임했다. 그 역시 출자에 참여한 직원 중 한명이다.]

✚ 지난 5년간의 실적을 보면 성공적인 안착인 것 같다.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시장에서도 그랬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걱정이 많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인데, 수백명의 오너가 있으니 안 그랬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회사가 매각될 위기를 함께 겪었다. 그런 만큼 서로가 오너로서의 권리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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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머리를 맞댔나.

"저기(사장실에 붙은 액자를 가리키며) 보이는가. '최고의 기술로 세상에 기여하는 행복한 직원들의 기업 한국종합기술'이라고 돼 있다. 내 경영목표도 같은데, 맘대로 정한 게 아니다. 직원 전체가 모여서 정한 우리의 미션이다. 직원들은 사장이 저 미션을 실현해주길 원한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행복하게끔 해달라는 거다. 직원들이 권리만 내세우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CEO에게 충분한 재량을 주고, CEO의 방침에 맞춰 일한다. 그런 결심이 쉽지 않은데, 직원들은 그걸 지켰다."

✚ 사례를 들어 얘기해줄 수 있는가.

"아무래도 내가 사장이 된 후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장 후보가 되기 전부터 직원들이 원하는 미션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이후 안정적인 성과를 꾸준히 내는 게 행복의 조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 2위인 한국종합기술의 이름에 부합하는 실적을 못 내는 부서의 실적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어떤 조치를 했나.

"원래부터 회사 분위기는 실적을 많이 따지는 편이었다. 직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된 후엔 더욱 그랬다. 실적이 좋은 부서엔 불만이 생겼고, 실적이 나쁜 부서는 미안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녔다. 그래서 가장 실적을 못 내는 부서 세곳에 단기 실적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3~4년 내에 원가절감이 아닌 수주를 통해 실적을 끌어올릴 방안을 만들어 오라 했다."

✚ 어떤 방안들이 나왔고, 결과는 어땠나.

"각자의 현실을 감안해 달성 가능한 목표치를 만들어왔다. 일례로 한 부서는 영업인력이 더 필요하다 했다. 지금껏 패배의식 때문에 뭘 해달라는 요구를 못했던 부서가 인력충원을 요구한 거다. 구체적인 계획이 그럴듯해 보여서 인력을 충원해줬다. 그랬더니 15년간 만년 적자였던 부서가 1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이에 따른 인센티브도 받게 됐다."

✚ 미안함에 고개를 못 들던 조직에 활기가 생겼으니 그 부서의 직원들이 뿌듯했겠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게 반짝 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꾸준한 실적이어야 한다. 다행인 건 그렇게 성장한 부서의 실적이 올해도 나쁘지 않다는 거다."

✚ 실적이 좋지 않던 모든 부서의 실적이 모두 개선됐나.

"그렇지는 않다. 그 부서들이 모두 획기적인 실적을 내겠다고 한 게 아니어서다. 각자의 현실에 맞춰서 실현 가능한 계획을 내놨고, 그에 맞는 실적을 내고 있다. 각 부서들마다 다른 조치를 취했고,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 CEO의 재량은 충분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물론 CEO가 하기 나름이다. 일례로 전임 사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노조의 대의원대회 워크숍에 참석해 노사간담회를 가졌다. 의무는 아니다. 단지 소통을 위해서인데, 1시간으로 잡혀 있던 일정을 4시간으로 연장했다. 실적 얘기부터 종업원지주사에 관한 의견교환, 뭘 고쳐달라는 건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를 했다. 평소에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내 생각을 얘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다른 기업처럼 임금협상 때나 마주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불가능한 건 없다고 본다. 심지어 사장의 연봉이 너무 낮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어떤 기업의 노조원이 그런 말을 하겠는가."

한진중공업 계열사였던 2016년 한국종합기술 등기이사 평균연봉은 4억2652만원이었지만, 지난해엔 1억1759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등기이사 수는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는데, 보수총액은 오히려 8억5304만원에서 4억7038만원으로 줄었다.

✚ 내부 사정에 밝은 내부 출신 CEO의 전략이 통한 것 같다. 전임 사장도 내부 출신이었는데, 사장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부회장으로 직함이 바뀌고, 1년간의 예우기간을 거쳐 고문이 된다. 이후엔 자신의 희망 업무와 각 부서의 의견 등을 종합해서 다시 직원으로 일한다. 직책과는 별개로 각 부서장의 업무지시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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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금은 어떻게 처리되나.

"수익구조상 한국종합기술이 굉장히 큰 이익을 낼 일은 없다. 다만 과거엔 회사의 이익을 특정 오너가 독식하는 구조였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다. 낼 거 내고 나서 사장이 경영상 지출이 필요하다면 요청할 수 있고 그 외에 나머지는 지주사인 한국종합기술홀딩스로 넘어간다. 배분을 하든 투자를 하든 홀딩스에서 결정할 일이다."

✚ 새로 영입된 직원들 중에 출자를 하겠다는 직원은 없나.

"당연히 있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토한 후에 결정하라는 뜻에서 일부러 대리가 되기 전까지는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래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엔 막지 않는다."

✚ 임기가 끝나면 다시 직원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는데, 맡고 싶은 업무가 있는가.

"건설사업관리 분야에서 감리단장을 오래 했다. 최고의 감리단장으로 한국종합기술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싶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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