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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저출생인데 '어린이집' 입소는 여전히 바늘구멍... '엔데믹' 보육난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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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새 어린이집 대기자 23.5% 급감
민간어린이집 폐업에 보육 수요 급증
입소 경쟁 가열... 공보육에 올인 금물
한국일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어린이집 원생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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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하고 생후 6개월 된 둘째 아이를 돌보고 있는 김모(36)씨는 최근 집 근처 민간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을 했다. 휴직이 끝난 뒤 복직해도 재택근무가 없어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다. 다행히 자리는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은 “아이가 너무 어리다”며 받기를 꺼렸다. 대신 지금 등록해 매달 60만 원을 내면 자녀가 좀 더 컸을 때 1세 반에 넣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입소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우선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저출산 여파로 어린이집(0~5세 보육) 대기 아동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막상 입소는 어려운 모순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3년 새 민간ㆍ가정어린이집 약 8,000곳이 폐원한 데다, 최근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따른 보육 수요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보육난이 가중되자 부모들 사이에서는 “출생 직후 입소 신청하라”, “자릿값이라 생각하고 원비를 내라” 등의 팁까지 공유되고 있다. 여전히 빈약하기만 한 우리의 보육 현주소다.

민간어린이집 3년 새 8000곳 '증발'

한국일보

민간·가정어린이집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민간ㆍ가정어린이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 유행 전인 2019년 2만9,685곳에서 지난해 말 2만1,835곳으로 7,850곳(26.4%) 줄었다. 감염병이 전국을 휩쓸던 3년간 해마다 2,500곳씩 문을 닫은 셈이다. 저출산에다 바이러스 확산까지 겹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이 늘어난 결과로 해석됐다. 같은 기간 어린이집 입소 대기자가 23.5% 줄었는데도, 어린이집 입소가 쉽지 않았던 이유다.

물론 3년 동안 국ㆍ공립어린이집 1,500곳이 신설되면서 민간ㆍ가정어린이집 줄폐원에 따른 공급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 정부는 2019년부터 새로 짓는 5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 국ㆍ공립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재택근무 폐지,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 해제 등 일상 회복과 함께 어린이집 수요가 다시 급증하면서 수급 불일치 현상이 눈에 띄게 가중되고 있다. 본보가 취재한 서울 민간ㆍ가정어린이집 10곳 중 7곳은 코로나19 종식과 맞물려 입소를 원하는 문의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직장으로 출근하는 엄마들이 많아져 대기자도 최대 3배 늘었다”며 “특히 0~1세 반에 문의가 집중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녀 출생 직후 어린이집 신청은 '국룰'

한국일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어린이집 원생들이 소풍을 나와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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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육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린이집 입소 관련 각종 팁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입소 대기를 걸어두는 건 기본. 김씨처럼 보육료를 먼저 내고 자리를 선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모(44)씨는 “쌍둥이를 같이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을 겨우 찾았는데, 어린 나이를 이유로 입소를 거부해 보육료만 6개월 지불했다”고 말했다. 빠른 입소를 위해 아예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용산구로 집을 옮긴 임모(35)씨는 “4월 복직에 맞춰 어린이집을 알아봤는데 갈 곳이 없어 이사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공보육 활성화 정책은 바람직하다. 다만 당장 3만 개가 넘는 전체 어린이집의 70%를 차지하는 민간ㆍ가정어린이집 폐업을 방치하다간 보육 전쟁을 외려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 국ㆍ공립어린이집 비율은 채 20%가 되지 않는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새로 생긴 공립어린이집에 원아가 몰려 인근 민간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며 형평성을 갖춘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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