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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장용훈의 한반도톡] 대화 탐색하는 북일…남북대화 빈자리를 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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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1995년 쌀지원·2014년 스톡홀름 합의 등 깜짝 대북외교 선보여

연합뉴스

인사하는 한미일 정상
(히로시마=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2023.5.21 [공동취재]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대화 의지를 주고받는 북한과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7일 납북자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북일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갖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외무성에서 일본 문제를 담당하는 박상길 부상은 담화를 통해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담화 이후 기시다 총리는 "직접 맞선다는 각오로 납북 문제에 임해왔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며 대북 대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북한과 일본이 대화를 향한 탐색을 본격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심지어 북한은 지난달 29일 일본 해상보안청에 '오는 31일 0시부터 내달 1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직접 통보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총회 결의서에 따라 운영 중인 전세계항행경보제도(WWNWS)상 한국과 북한이 속한 구역(NAVAREA XI)의 조정국은 일본이기 때문에 취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IMO 등 국제기구의 본부에 직접 알리는 방식으로 사전조치를 취했던 만큼 달라진 태도가 읽힌다.

남북간의 대화가 사라지고 북한의 군사적 무력시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북한과 일본은 대화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일단 미국은 일본의 대북대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지난달 31일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성명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외교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지만, 북한은 즉각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관여를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북한과의 외교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지를 피력했다.

북한에 대한 관리 필요성을 느끼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동맹인 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고 의사소통 창구가 마련되면 이를 반대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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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저작권자 ⓒ 200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대화가 사라지고 악화일로를 걷는 남북관계도 북일협상 재개에 핵심변수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일대화의 물꼬를 튼 계기는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에 협조하겠다고 했던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이었다. 이후 1990년 9월 가네마루 신 자민당 의원이 이끄는 자민당·사민당 대표단이 방북하면서 북일 당국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남북대화와 북일대화는 대체로 보조를 맞추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평양정상회담이다.

당시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일본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북일관계 개선과 북일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양국 사이에서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한 틈을 비집고 북일대화가 시작돼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김영삼 정부 때의 대북 식량지원이다.

아사자가 발생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북한은 1995년 5월 자민당 소속 의원들을 통해 일본에 식량지원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도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가 맺어지고 일본까지 대북지원에 나서자 북한 문제에서 소외될 상황에 직면한 김영삼 정부는 서둘러 북측과 식량지원 협의에 나섰다.

당시 북한은 당국간 협의를 거부했고, 결국 민간 성격의 코트라 비선을 통한 남북 접촉을 통해 15만t의 쌀 지원이 합의해 일본보다 먼저 북한에 쌀을 지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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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서 대면한 북일 협상 대표
(스톡홀름 교도=연합뉴스) 스톡홀름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송일호(왼쪽)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각각 모두 발언을 하는 장면. 2014.5.26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jhcho@yna.co.kr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인 2014년 북한과 일본이 제3국 지역인 스웨덴에서 국장급협의를 열고 채택한 스톡홀름 합의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좋지 않은 남북관계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북한의 납치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대북독자제재 해제를 골자로 한 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지만, 대북강경태도로 익숙한 아베 신조 총리의 재임 기간 이뤄진 합의라는 점에서 더 눈에 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향해 거칠게 욕하던 북한이 대일대화에 열린 태도를 보인 사실 자체가 눈여겨볼 대목"이라며 "양국관계는 물밑에서 오랜 기간 숙성 과정을 거쳐 물 위로 떠올라 주변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시다 총리가 약 5년간 외무상을 지내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읽으며 국익 중심의 외교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북한의 위성 발사 등의 변수가 있어 당장은 아니더라도 북일간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고 말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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