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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나똑똑 AI'만 넘치는 한국…리더 10인이 제안한 생존법 [AI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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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일러스트=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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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기술 시장에서 한국의 길은 어디에 있나.

한국은 AI 언어모델을 자체 개발할 정도로 기술력은 있지만, AI 산업화의 길은 아직 멀다. 오픈AI 같은 혁신 기업이 나오기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이 느슨하고, 지난 15년 간 서울대 컴퓨터과학 전공 정원 증가 폭이 45%(55명→80명) 증가에 그칠 만큼 인재 육성 체계가 미흡하다. 같은 기간 스탠포드대 컴퓨터전공 입학 정원은 430% 늘었다.

중앙일보가 국내 산업·학교·연구계를 대표하는 AI 리더 10명과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한국이 4대 크레바스(빙하의 균열)를 메우지 않고서는 AI 산업화를 이룰 수 없다고 진단했다. ▶기술과 인프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와 서비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단절을 이어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들은 한국 기업들이 제조·금융·바이오 등 산업별 특화 AI를 만들고, 이를 들고 해외로 나가는 게 경쟁력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한국의 ‘비(非) IT’ 기업에선 AI 인재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은 “AI 인력이 넘쳐나 기존 산업 구석구석에 흘러 들어가야 혁신이 시작되는데, AI 전공자들이 적다보니 네이버·카카오 이외 기업 거의 안 간다”라고 말했다.

한국어 AI는 시험 치를 시험지도 없다. AI 모델을 산업에 적용하려면 성능 평가가 필수다. 그러나 현재는 객관적 평가법이 없고 기업마다 ‘우리 AI 똑똑하다’라고 주장하는 수준이다. 배경훈 LG AI 연구원장은 “한국어 초거대 AI를 평가할 수 있는 문제은행 데이터가 빨리 정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빅테크는 ‘굴러온 돌’을 통해 내부 AI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 올린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내부 AI 개발팀 1500명의 연구 성과를 제쳐놓고 스타트업 오픈AI의 GPT를 자사 전 제품에 적용했다. 구글도 오픈AI 경쟁사인 앤쓰로픽에 4억 달러(약 5000억원)를 투자했고, 내부 AI 조직 개편에서도 외부 출신을 앞세웠다. 반면 여전히 직접 손 대야 안심하는 한국 대기업의 ‘제조업 관성’은 스타트업 협력의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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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 AI 산업 앞길을 위협하는 크레바스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 AI 리더 10인은 중앙일보에 10가지 제언을 던졌다.



① 기술-인프라 단절



AI 모델의 학습·개발·운영은 모두 클라우드에서 이뤄진다. MS는 지난 2019년 오픈 AI에 투자하며 자사 클라우드 '애저'를 오픈AI에 지원했다. 지난 1월 MS는 애저 전용 GPT 서비스를 출시했다. 스타트업 투자와 수익 사업의 선순환을 만들어낸 것.

그러나 국내 기업에 기술과 인프라의 찰떡궁합은 먼 얘기다. 검색(네이버)과 메신저(카카오)에서 한국 시장을 지켜냈다지만, 네이버·KT 등 국산 클라우드는 외산(AWS·애저·구글 등)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 미미하고, 카카오는 자사 초거대 AI 모델을 구글클라우드 위에서 개발하고 있다.

AI 리더들은 ‘정부 인프라 지원’에 입을 모았다. 생성 AI 스타트업 뤼튼의 이세영 대표는 “정부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같은 AI 인프라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②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단절



현재 AI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AI용 연산처리장치(GPU) 시장의 90%를 차지한 엔비디아다. 구글·메타·MS 등 빅테크가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 들어도 엔비디아가 독주하는 비결은 HW와 SW의 결합. 엔비디아는 GPU용 SW 플랫폼 쿠다(CUDA)를 2004년부터 키웠고, 전세계 엔지니어들이 이 플랫폼을 애용한다.

한국에 유망한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있고 정부도 관련 육성 정책을 내놨지만 “SW 투자 없이 HW에만 치중해서는 GPU를 이길 수 없다”(전병곤 프렌들리 AI대표)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순영 KB국민은행 금융AI센터장은 “AI 반도체는 국가적으로 HW 와 SW를 고루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외 빅테크는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찾아내 주목한다. 엔비디아는 GPU 가상분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래블업을 아태 지역 유일의 협력사로 선정했고, 반도체 설계 IP(지식재산) 거물인 ARM은 AI 모델 경량화·최적화 기술을 가진 노타AI를 택했다.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은 “한국은 SW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방향의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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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③ 데이터-서비스 단절



한국 AI의 살 길로 꼽히는 ‘특화 AI’서비스엔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특히, 영역별 AI 서비스가 나오려면 개별 기업의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순영 센터장은 “의미있는 AI 서비스가 나오려면 기업 간 데이터 결합이 필요하다”며 “데이터 협업이 가능하도록 관련 정책이 정비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송이 사장은 “한국의 뛰어난 의료 시스템과 양질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면 의료 AI 솔루션이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진우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이 이미 강점이 있는 K엔터와 교육, 제조업 등 분야에서 한국 AI의 강점이 나올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선결 과제는 각 산업에 녹아들 수 있도록 AI 인력이 늘어나는 것. 장병탁 원장은 “대학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늘리는 정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했고, 김주호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해외 우수 연구·개발 인력 유입을 위해 비자·이민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➃ 대기업-스타트업 단절



챗GPT는 대기업 MS가 오픈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시작됐다. 투자 불경기라지만, AI 스타트업 인수 및 투자 전쟁은 치열하다. 구글은 올해 들어서만 앤쓰로픽·런웨이 등 유망 AI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이스라엘 AI 기업을, 독일 제약사 바이온텍이 영국 AI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등 산업 경계를 넘는 투자도 활발하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및 인수 사례는 지난해 투자 혹한기 이후 더 드물어졌다. 한 AI 기술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 내부의 AI 인력들이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라며 “‘우리가 직접 다 할 수 있다’고 내세워야 내부 입지가 생기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 스타트업은 해외 반도체 업체와 협력을 논의 중이다.

한국 AI의 생존법에 관한 더 깊은 스토리는 The JoongAng Plus ‘팩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특별취재팀=심서현·김인경·여성국·권유진·김남영·윤상언 기자 factp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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