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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세계 속의 북한

'1兆 북한 위성'은 먹통 신세 피할 수 있을까? [무기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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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우주군과 맞서는 만리경 1호의 운명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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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 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1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 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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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반도에서는 2번의 위성 발사 시도가 있었다. 하나는 세계 경제순위 12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누리호’ 발사였고, 다른 하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천리마-1형’ 발사였다. 5월 25일 발사된 누리호는 탑재된 위성들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안착시켰지만, 5월 31일 천리마-1형은 1단 로켓 연소가 끝나고 단 분리가 이루어진 직후 2단 로켓 점화에 실패하며 서해로 추락했다. 2009년 ‘광명성-3 호’ 발사 때 북한이 쓴 돈이 8억5,000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으니, 북한은 이번에 1조 원 넘는 돈을 날렸다고 봐야 한다. 이 돈으로 식량을 샀다면 당분간 북한에 ‘식량난’이라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북중 순망치한 관계로 읽어야 할 위성발사 속내


그렇다면 북한은 식량 위기로 체제 안전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어째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정찰위성을 쏘려고 했던 것일까. 북한이 위성, 정확히는 이번에 발사된 만리경 1호와 같은 군사정찰위성 확보를 결심한 것은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정확히 읽고 대응책을 정립·공식화한 2021년 6월 11일 조선노동당 제8기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서다. 당시 김정은은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로 규정하면서 "북한이 중국에 일정 부문 기여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교시했다. 북한과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서태평양 전진기지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국의 동맹국 북한은 유사시 중국에 가장 중요한 우군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다양한 전략자산을 가지고 일정 부문 견제 역할만 해 준다면 대만 유사시 미·일 연합군의 대만 집중을 막을 수 있고, 미국과의 직접 충돌 상황에서도 북한을 방파제 삼아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속마음을 읽었고,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때 이 부분을 언급하며 전략군 개편을 결정했다. 당시 전략군 개편을 언급한 후 북한의 미사일 운용 전력은 기존의 전략군과 ‘미싸일총국’으로 나뉘었다. 운용 전력과 편제가 유사한 조직을 2개나 운용한다는 것은 이들이 장비는 유사하지만 임무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시 중앙군사위 회의 때도 개편 후의 전략군은 유사시 중국을 위한 방어전을 수행하는 조직과 미 본토를 겨냥한 공격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나눠질 것이라고 전해진 바 있다.

이러한 조직 개편 이후 북한은 다양한 유형의 장거리 타격 자산을 대량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3월 미사일 도발은 이 전력들의 실전 대비 훈련 성격이었다. 특히 3월 19일 발사된 북한의 사일로 발사식 KN-23B 미사일의 경우, 당시 한미연합훈련을 위해 한반도로 북상 중이던 미국 마킨 아일랜드 상륙함 전단을 가상 표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발 당일 발사 원점과 동해상 탄착점 사이에 가상의 선을 긋고, 이를 그대로 남쪽으로 돌리면 바로 그 지점에 마킨 아일랜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미사일 도발을 전후로 다양한 유형의 순항 미사일과 핵탄두 탑재 가능 수중 드론의 장거리 공격 훈련도 수행했다. 이 도발 모두 유사시 한반도 인근으로 북상하는 미국의 항모·상륙함 전단을 겨냥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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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는 미 마킨 아일랜드함 갑판에 F-35B를 비롯한 전투기들이 탑재돼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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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경 1호, 1시간마다 미 항모 위치 파악할 수


국가정보원은 만리경 1호가 1m 해상도를 가진 광학정찰위성이라고 보고 있다. 1m 해상도의 의미는 '가로·세로 1m를 하나의 점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해상도는 현재 기준에서 썩 훌륭한 능력은 아니지만, 길이 300m, 폭 70m가 넘는 항공모함은 얼마든지 식별할 수 있다. 통상 정찰위성은 500~1,500㎞의 저궤도·극궤도위성으로 발사되며, 하루 2차례 같은 지역 상공을 지난다. 이론적으로 북한이 12개의 광학·레이더 정찰위성을 띄우면, 1시간에 한 번씩 미국의 항모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항모의 항해 속도는 최대 시속 60㎞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1시간에 한 번씩만 대략적인 위치와 항해 방향을 파악하면 미래 위치를 예측해 미사일이나 수중드론 공격이 가능하다. 이 미사일과 수중드론에는 ‘화산 -31’로 명명된 전술핵탄두가 탑재될 예정이기 때문에 미 항모의 대략적인 위치만 알아도 핵공격을 통해 원거리에서 제압이 가능하다는 것이 북한의 판단으로 보인다.

‘주먹’이 준비됐다면 ‘눈’도 필요하다. 북한은 전략군·미싸일총국 산하에 이러한 공격 무기 배치를 서두르면서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를 통해 전략군 산하 ‘우주전략부’ 신설을 결정했고, 같은 해 10월 최고사령부 전신 명령 형식으로 우주전략부가 공식 출범했다. 해당 지시문에서 우주전략부는 ‘대량 배치될 군사정찰위성 운용부대‘이자 ’전술핵 운용부대의 눈과 귀, 신경‘으로 규정됐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은 위성 발사를 통해 유사시 미국의 항모전단을 원거리에서 핵으로 요격할 수 있는 ’북한판 핵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구사할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북한이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중국의 전위(前衛)가 되기로 결심했던 2021년, 미국은 주한미군 군산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607항공작전센터에 사상 첫 우주군 병력을 배치했다. 이들은 전투부대라기보다는 유사시 주한미군에 전개되는 우주군 전력을 지원하기 위한 연락반 성격이 강한데, 주한미군에 우주군 조직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주한미군 기지에는 ‘대통신체계(CCS·Counter Communications System) 블록 10.2’라는 장비가 수시로 전개되고 있다. 트레일러에 탑재돼 수송기로 어디든 신속 배치가 가능한 CCS 블록 10.2는 일반 위성 통신용 안테나처럼 생겼지만, 적 위성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무기체계다. 모든 위성은 지상 기지국과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작동하는데, CCS 블록 10.2는 업링크·다운링크 양방향 통신을 모두 교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의 지상 위성 통제소가 군사정찰위성에 보내는 명령 신호를 교란할 수도, 북한 군사정찰위성이 촬영한 데이터를 지상 통제소로 송신하는 전파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시스템이 배치되면 북한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준비한 위성들은 모두 먹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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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임무를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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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위성 차단 위한 소프트·하드 킬 수단 보유


위성을 물리적으로 파괴할 경우 발생하는 우주 쓰레기 때문에 미국이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미국은 CCS 블록 10.2와 같은 소프트 킬 수단 외에도 SM-3라는 하드 킬 수단도 보유 중이다. 현재 다수의 이지스 구축함에서 운용 중인 SM-3 블록 1A/B 모델은 2008년 고장 난 정찰위성을 일격에 격추하며 그 성능을 과시한 바 있다. 현재 배치되고 있는 신형 SM-3 블록 2A 모델은 최대 1,500㎞ 고도까지 요격이 가능해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많아야 10여 기 정도 발사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정도는 손쉽게 요격할 수 있다. 중국이 정찰위성을 통한 미 항모 전단 추적을 포기하고 WZ-8(無偵-8)과 같은 극초음속 무인 정찰기를 도입한 이유는 미국이 언제든 위성을 무력화·파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북한은 5월 위성 발사 실패 이후 문제점을 보완해 재차 발사를 시도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북한판 핵 A2/AD를 구현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중국에 기여해 반대급부를 받아낼 심산이겠지만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군사정찰위성은 이미 모든 대응 준비를 마친 미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북한 지도부는 아무 쓸모없는 군사정찰위성에 ‘조(兆)’ 단위 돈을 쏟아부을 생각을 접고, 그 돈으로 ‘조(좁쌀)’라도 사서 주민을 구휼하는 것이 체제 안전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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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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