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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시위와 파업

37억원 없이도 파업할 권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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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받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오른쪽)과 엄길정 현대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손해배상 소송 철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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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대법원 법정에 무거운 마음으로 앉았다.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2009년 점거 파업에 대해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대해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손배 소송의 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 소송은 대법원 선고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그동안 쌓인 배상금이 100억원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0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한다.” 대법관 선고가 떨어진 순간 노동자들은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법원 문 앞을 나선 모두가 활짝 웃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 기쁜 순간은 딱 그때까지. 약 10분 후 대법원 보도자료를 통해 구체적 내용을 확인했다. 노동자들은 다시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대법원은 쌍용차 사건에서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55억원중 19억원을 빼고 배상 액수를 다시 계산하라고 했다. 19억원은 쌍용차 사측이 2009년 파업에서 복귀한 일부 노동자에게 임의로 지급한 ‘위로금’이었다. 뒤늦게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돈이 배상액에서 빠진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선고 시점까지의 배상 금액은 37억원. 금속노조가 내야 할 금액이 정해진 셈이었다. 금속노조가 재판 내내 이런 거액 손배소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소송의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법원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판결에서도 손배 책임을 부정하거나 면제하지 않았다. 다만 파업으로 자동차 생산이 일시적으로 줄더라도 잔업과 특근으로 손실을 벌충할 때도 있으니 이 점까지 고려해 배상액을 계산하라 한 것이다. 또 구체적인 사실을 봤을 때 ‘불법파업’에 대해 노조와 파업 참가 조합원이 같은 정도로 책임을 질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조합원이 노조보다 더 적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액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현대차에 20억원을 물어줘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 배상액의 50%만 책임진다 해도 1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과 사용자 단체는 이번 판결로 불법파업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호들갑이다. 그러나 대체 무슨 현실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인가? 100억원이 37억원이 되면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인가. 쌍용차와 같이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현대차와 같이 불법파견 판결로 ‘정규직’이 된 노동자가 교섭을 거부당해도, 대법원은 ‘파업은 불가, 특히 점거 파업은 금지’라고 못 박았다.

‘합법 파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면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는 천문학적인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판결은 그들의 배상 책임을 줄일 길을 열어줬지만, 그렇게 하려면 노동자 개인은 ‘노조나 다른 동료에 비해 한 일이 없다’고 법원을 설득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한국 사회가 진정 ‘노동3권’을 존중한다면 합법 파업의 범위를 늘리고 파업 책임은 개인이 아닌 노조 조직에만 지우라 요구해 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요구 중 일부를 반영해 사용자가 노동자 개인에게 손배 책임을 물으려면 개별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판결에 이런 문제의식이 일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 무섭게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들은 법 개정과 아무 상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가뜩이나 노동자에게 부족한 판결이 더더욱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조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나아가 지금 국회에 계류된 그것보다 더 많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는 그저 파업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현재와 미래, 모든 것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소망할 뿐이다.

경향신문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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