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집에서 영화 볼 수 있는 점은 좋아"
서랜도스 "한국 영화, 표현의 자유로 발달"
테드 서랜도스(왼쪽)는 좋은 영화를 “감정적인 연결과 탈출구 역할 둘 중 하나를 지닌 것”이라고 말했고, 박찬욱 감독은 “개인의 감정과 경험의 좁은 범위를 넓혀 주는 영화”라고 정의했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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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만나 영상산업의 현재와 영화의 미래에 대해 대화한다면. 영상산업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까지 해준다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열린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는 여러 영화학도들의 의문을 해소해 준 동시에 대중에게도 영상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던져 줬다. 이날 행사는 서랜도스의 방한을 맞아 넷플릭스가 마련했다. 넷플릭스는 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까지 맡은 영화 ‘전란’에 투자하고 있다.
서랜도스와 박 감독은 젊은 시절 비디오대여점에서 일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박 감독은 “1999년 결혼도 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친구와 동업으로 비디오대여점을 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구하기 힘든 고전 영화, 예술 영화를 잘 보이게 배치하고 손님에게 영화 추천도 하고는 했으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곧 문을 닫았다”며 “동업자는 여전히 곁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의 동업자는 조영욱 영화음악감독이다. 조 감독은 ‘올드보이’(2003)와 ‘박쥐’(2009),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 등 박 감독 영화 대부분의 음악을 담당해 왔다. 박 감독은 “비디오대여점 하던 시절에 비해 고전 영화와 예술 영화를 여러 좋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더 쉽게 볼 수 있어 세상이 꼭 나빠지는 건 아니다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영화를 보는 이들은 더 줄어든 듯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서랜도스는 “대학을 그만두고 비디오대여점에서 일할 때 손님이 없어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며 “좋은 영화가 어떤 건지는 당시 다 배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처음엔 DVD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사업을 했다”며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비디오가 사람들을 연결해 줬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전 영화를 터치 몇 번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황금 같은 통찰력을 줄 테니 고전을 많이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영상산업 환경의 급변으로 이어졌다. 극장 관객수는 쪼그라든 반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이용자는 급증했다.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서랜도스는 “지금이 이야기 만들기의 황금기”라며 “영화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낙관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야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사람들이 절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저도 어두운 곳에서 여러 사람과 큰 화면으로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며 “(OTT 발달로) 영화 보는 방법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감독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는 “여러분처럼 겁도 나고 기대가 있기도 하다”며 “넓게 봤을 때 영화의 미래는 다양성의 증가로 갈 거”라고 내다봤다. 박 감독은 “(일반인이) 만드는 데 있어 장벽이 많이 낮아졌고 전문가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시대”라며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만큼은 저도 힘들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OTT의 인공지능 추천을 통해 모르는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된다”며 “자신의 영화세계가 넓어질 수 있는 점도 좋다”고 평가했다.
서랜도스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을 본 후 한국 영화에 빠져들었다”며 “표현의 자유가 한국 영화를 성장시켰다”고 분석했다. “심의나 검열이 없어 제작 속도가 빨라졌고,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영화 강국이 됐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한국인들이 식민지배와 전쟁, 독재,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점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 발전에 영향을 줬다”고 봤다. “웬만한 자극에는 끄덕하지 않는 관객들을 위해 감정의 진폭이 크고, 다양한 감정이 들어간 영상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는 점에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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