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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프랑스 시위 촉발 '나엘 동영상'…톨레랑스에 가려진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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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아랍계 남성, 백인 남성보다 3배 넘게 신분 확인

"거주 지역·피부색으로 인한 낙인서 벗어날 희망 없어"

'자유·평등·박애' 프랑스 정체성 위기…유엔도 "인종차별" 지적

연합뉴스

한 소방관이 불타는 차량을 진화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프랑스에서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일을 도화선으로 수십년간 경찰에 쌓인 소수·이민자들의 분노가 과격 시위로 터져 나오고 있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가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 포용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모양새다.

2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달 27일 17세 '나엘'의 사망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경찰이 그에게 총을 쏜 건 정당방위였다고 알려졌다.

차량 검문에 걸린 나엘이 자동차로 경찰을 치려고 해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시간 뒤 목격자가 촬영한 동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되면서 대중의 분노는 폭발했다.

동영상에는 나엘의 차량 옆에 두 명의 경찰관이 서 있고, 한 명이 운전석 쪽 창문에 권총을 겨누는 모습이 담겼다.

이어 "네 머리에 총알이 박힐거야"라는 음성이 들리자 나엘의 차량이 경찰을 지나쳐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즉시 총을 겨누고 있던 경찰이 운전석 안을 향해 한 발을 발사했다. 이후 나엘의 차량은 수십m를 이동한 뒤 어딘가에 부딪혔고 나엘은 그대로 사망했다.

분노한 이들은 경찰이 나엘에게 총을 쏜 건 인종차별적 행태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파리 교외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알제리·모로코계 나엘이 아니라, 파리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젊은 백인 남성이 나엘처럼 가벼운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면 경찰이 총을 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지난주 나엘의 추모 행진에 참석한 카데르 마흐주비(47)는 NYT에 "우리는 항상 이중의 판단을 받는다"며 "당신은 항상 스스로 정당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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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엘의 사망에 항의시위하는 시민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수 이민자가 프랑스 경찰의 인종차별을 당하는 건 비일비재하다.

북아프리카계 청년 텔하우이(26)는 2년 전 퇴근길에 아무 잘못도 없이 경찰한테 욕설을 듣고 교통법규 위반 딱지를 떼였다.

모로코 출신의 일리에스(25)는 지난해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 파리 동부 집 앞 벤치에 앉아있다가, 근처에 있던 일부 청소년이 경찰을 향해 폭죽을 터트리는 통에 한통속으로 몰려 경찰봉에 맞아 치아 몇 개가 빠지고 턱뼈가 부러졌다.

이후 일리에스는 경찰청 감찰관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1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그는 해당 경찰관으로부터 문제 제기를 취하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텔하우이는 WSJ에 "어렸을 때부터 늘 똑같았다. 경찰에 제지당할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인다"며 "어느 순간 우리는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직무집행에 있어 인종차별이 얼마나 만연한지는 연구 결과로도 드러난다.

2017년 프랑스의 한 독립 민권사무소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나 아랍계 남성이 5년간 경찰에게서 신분 확인을 요구받은 비율은 백인 남성보다 약 3배, 5회 이상 불심 검문을 받은 비율은 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대변인은 프랑스에 "법 집행에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다뤄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외무부는 이런 비난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프랑스 경찰은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형태의 차별에 단호히 맞서 싸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파리 교외에는 마약 밀매나 갱단 활동, 폭력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치안 활동을 펴는 것이지, 그들의 인종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프랑스 경찰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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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약탈당한 상점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범죄학자 세바스티앙 로셰는 WSJ에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NYT는 프랑스에서 인종에 대한 논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보편적 권리를 공유하고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공화국 건국 이념에 반하기 때문에 매우 금기시된다고 지적했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사회학자 줄리앙 탈핀은 NYT에 "오늘날 인종 차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여겨진다"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이지만, 그게 프랑스 사회의 지배적인 합의"라고 말했다.

그 결과 많은 소수자는 이중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

대표적 이주민 지역인 파리 교외 센생드니 거주자들은 "우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니 프랑스인이라고 느끼지만, 프랑스계 프랑스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프랑스 동부의 빈곤 지역 중 한 곳인 보르니에서 사회당 의원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아니파 게르미티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1983년의 인종차별 반대 움직임 이후 40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며 "인종차별은 만연하고 기회균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르미티는 이어 "희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사람들은 거주 지역과 피부색으로 인한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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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서 경찰에 쫓기는 시위대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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