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지원재단, 민법상 '변제자' 인정 여부가 쟁점
제3자 변제·공탁금, '위로금' 성질의 채무인지도 따져야
'강제징용 배상금 공탁 개시' 외교부 앞 규탄 기자회견 |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황윤기 기자 =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측에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지급할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3일 밝히면서 법적 효력과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영향에 관심이 모인다.
정부가 이날 밝힌 방식과 관련해 법조계의 해석을 종합하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법원에 판결금을 공탁하더라도 그 유효성이 인정될지 여부가 논쟁이 될 전망이다.
전례가 없어 유력한 학설이나 확립된 유사 판례도 사실상 찾을 수 없는 터라 해석이 제각각이다.
공탁은 일정한 법률적 효과를 얻기 위해 법원에 금전 등을 맡기는 제도다.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권자(강제징용 피해자)가 변제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는 경우 변제자는 변제 공탁을 통해 채무를 면할 수 있다. 이때 '변제자'는 채무자(일본 기업) 또는 채무자와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정부는 채권자인 피해자가 변제받지 않고 있으므로 재단이 변제자 지위에서 법원에 판결금을 공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법률 검토 결과 제3자인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 공탁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면 채무는 변제된 것으로 인정돼 소멸한다. 대법원 결정만 남은 미쓰비시·일본제철 등 일본 피고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절차도 중단될 수 있다.
쟁점은 재단이 적법한 '변제자'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다. 구체적으로 민법 469조 조항의 해석이 공탁의 유효성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민법 469조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정한다. 다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 조항을 뒀다. 같은 조 2항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강제징용 피해자 일부는 일본 기업의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제3자 변제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 같은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으므로 재단을 변제자로 볼 수 없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그러나 채무자와 합의 없는 채권자의 일방적 반대를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해배상 채권의 성격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채무의 성질도 문제가 된다. 대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 채무는 일본 기업의 불법 행위로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다.
그런데 이 판결금을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제3자가 대신 지급한다면 정신적 손해를 위로하기 위한 판결금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제3자 변제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재단이 일본 기업들과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판례에 따라 배상하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 때문에 자신까지 법적 문제가 생기게 됐다면 빚을 대신 갚을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위)과 일본제철 본사 간판 |
최봉태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는 "현재 재단은 강제집행을 당할 위험성 있는 제3자가 아닌 만큼 공탁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단이 일본 기업들의 채무를 양도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일본 기업들이 변제 책임 자체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관측이다.
반면 이진기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채무자가 반대하지 않으면 제3자는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변제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춰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 기업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반대 의사가 없다"고 했다. 공탁이 유효하다는 취지다.
공탁의 유효성을 어느 단계에서 누가 판단할지도 문제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려달라며 신청한 사건의 재항고심을 작년 5월부터 심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법원은 하급심이 결정한 현금화 명령의 적법성만 따져 재항고를 기각하거나 인용한다. 법원 명령에 따른 강제집행을 멈추려면 하급심 법원에 별도 청구이의 소송을 내야 한다. 공탁의 유효성 판단은 이 단계에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강제집행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행위자가 여럿이고 복잡한만큼 대법원은 공탁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살펴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형식적 요건만 갖춰진다면 법원 공탁관이 우선 공탁을 접수하고 적법성 여부는 구체적으로 쟁점화된 사건의 재판부가 따질 것으로 보인다.
재단의 제3자 변제금을 받지 않은 피해자 측은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자산 현금화 명령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에 공탁이 무효임을 주장할 계획이다. 별도로 공탁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정부의 공탁을 근거로 강제집행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청구이의 소송을 낼 수 있다. 다만 무대응으로 일관한 기존의 태도를 유지해 대법원의 매각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상황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려달라며 신청한 사건의 재항고심을 작년 5월부터 심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탁을 '지연 전략'으로 보는 의견도 나온다.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대법원이 공탁의 유효성을 심리하는 동안 피해자 측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위해서란 해석이다.
water@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