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오전 출근시간대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전날 밤 총파업 결의대회 후 노숙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을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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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위대는 해외 나가면 맥 못 춘다’ 는 말이 있었다. 불법 시위를 일삼던 한국의 과격 시위대가 미국에 가서는 순한 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원정시위대는 미국 워싱턴DC 경찰의 지시 및 관련 법규 모두를 지켰다. 하지만 귀국 후에는 또다시 경찰에 흉기를 휘두르고, 시위가 끝난 뒤에는 심야 술판을 벌였다. 이러한 이중 행태에 대한 비난 못지않게 무기력한 우리 경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게 없다. 지난 5월 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상경 ‘노숙 집회’가 만든 무법천지 아수라장으로 시민의 일상이 심히 망가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러한 현장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5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조 불법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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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일까. 우리 경찰은 미국 경찰처럼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순간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손목에 수갑을 채울 수는 없는가. 무엇이 한국 경비경찰을 이렇게 왜소하게 위축시켜 놓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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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 법 집행 후에도 보호 못 받아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집회ㆍ시위 대처 지침도 영향을 주지만, 근원적으로 경비경찰관들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몸으로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 법 집행을 했다가는 이후 결과에 대해서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사도, 경찰 조직도, 국가도, 또는 어떠한 법 제도도 말이다. 재수 없으면 시위대에 의해서 붙잡히거나 곤욕을 치르거나 소송에 휘말려 직장도 잃고, 재산도 잃을 수 있다는 교훈 같지 않은 교훈 탓이다.
실제 2010년대 초반 서울 한복판의 경비 책임을 담당했던 경찰 간부는 느닷없이 집회를 방해하는 범죄자가 된 것처럼 시위대에 붙잡히기도 했다. 심지어 해당 시위대는 이것도 부족했는지 국가가 아닌 해당 경찰관 개인을 콕 찍어 민사소송으로 재갈을 물렸다. 10년 동안 민사소송 등이 진행되어 최근에야 끝났다. 경찰관 신분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10년 동안 홀로 소송을 벌이면서 겪은 정신적 피폐와 신분상의 불안감, 그리고 국가에 버림받는다는 외로움과 자괴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또한 소송 결과 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사례도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소속으로 경비업무를 전담하는 경찰 간부가 2009년 집회시위 현장에서 변호사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 때문이다. 결국 직권남용이 인정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국가공무원법에 의해서 당연 퇴직되었다. 많은 경비경찰은 조직 차원의 어떠한 보호도 없이 당사자가 홀로 방치됨을 목도했다. 결국 형사소송을 당하면 직장 자체를 잃고 말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심어주었고, 경비경찰의 소극적 업무 행태의 원천이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경비경찰들의 공포감을 법 제도적으로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방안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난해 신설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1조의5의 경찰관 직무 수행 중에서 과실에 관한 형의 감면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는 몇 개의 특정범죄 상황과 일정한 조건에서의 경찰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임의적 형의 감면을 규정해 놓고 있다. 해당 조항 신설의 주요 취지는 피소 가능성으로 위축된 공권력을 회복하여 국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호함에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평온한 삶에 위협되는 불법적 집회시위 관리가 직무 중의 하나인 경비경찰을 제외할 이유는 없다.
2011년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서 경찰 들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폭행당하는 장면.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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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ㆍ시위 관련 형 감면 규정해야
위 법 조항의 해당 범죄에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공동주거칩입 등을 추가해야 한다. 순수한 집회ㆍ시위가 아닌 변질된 현장을 대표하는 범죄유형들이며, 이에 투입된 경비경찰 역시 다른 범죄현장과 마찬가지로 급박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경비경찰이 이러한 변질된 집회시위 현장에 직면하는 경우 소송에 대한 두려움(litigaphobia)은 다른 범죄군(群)에 비해 오히려 크면 크지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당해 공무원 개인을 괴롭히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국민과 공무원 간의 소송 남발의 폐해를 막고, 국가의 대위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의 국가배상법 개정이다. 즉, 공무원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국가작용으로서 행위에 대해서는 소송당사자의 범위에서 공무원 개인을 제외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공무원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구상권 청구의 대상은 그대로 존재한다. 이를 통해 경찰관 개인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해소해 정상적 직무 몰입이 가능하고, 사실상 혼자서 소송을 진행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줄어들게 된다.
형사면책조항 신설이 집회ㆍ시위 현장에서의 경찰권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면책조항은 모든 경비경찰 작용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경과실로 인한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만 적용될 뿐이다. 또한 법원에서 형을 감경할 것인지 면제할 것인지, 또는 아예 면책 조항 자체를 배제할지 심사를 거친다. 따라서 경비경찰의 권한이 남용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고, 면책 규정이 도입된다고 해서 적법절차 준수의무와 기준이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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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판례 통해 공권력 보호
해외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인 경찰활동을 지원하고자 다양한 책임 감면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 경찰이 업무 수행 중 공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을 사용하여 타인에 위해가 발행한 경우 기소되고 실제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심지어 가장 강력한 수단인 총기를 사용하여 인명 살상이 초래된 경우에도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0.3%에 불과하다. 면책조항이 들어있는 주취자 처리와 관련된 별도의 법규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불문법국가인 미국에서는 현장에서의 ‘경찰관의 합리성 판단’이라는 기준을 통해 법리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민사적으로도 ‘명확히 수립된 법적ㆍ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와 관련하여 피소되지 않는다’는 1871년 민권법 제1983조에 의한 면책권(qualified immunity) 덕에 경찰관의 손해배상 면책이 폭넓게 이루어진다. 우리도 경비경찰에 대한 면책조항 확대 및 강화를 통해 집회시위 관련 대응 업무를 자신감 있고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일상이 망가지지 않고 편해지며, 또한 평온해진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이 주제와 관련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다른 시각을 ‘중앙일보 소리내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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