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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집값 급등때 생숙 봇물…文 정부 '뒷짐'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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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내년에 입주 예정인 생활형 숙박시설 안양 평촌 푸르지오 센트럴파크.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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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는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해주려 하지만, 모든 계약자에게 동의부터 받아야 한다는데 정말 막막합니다."(청주 H생활숙박시설 계약자)

정부가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도록 정한 유예기간 만료를 90여 일 앞두고 생숙 소유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이행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데 정부가 현장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규제를 강화해서다.

12일 생숙 계약자들과 실거주자, 관련 업계는 "정부의 방치와 법적 미비 속에 생숙이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시설이 됐다"고 비판했다. 원래 생숙은 '주거' 기능을 강화한 숙박시설이다. 기존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이지만, 객실 내에서 취사와 세탁을 할 수 있고 개별등기가 가능하다. 취사가 되기 때문에 2012년 장기 숙박용으로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장기 거주'와 '실거주'의 경계가 모호해 수분양자들은 생숙을 주택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양 업체도 "숙박일수 제한이 없어 안심하고 주거해도 된다"고 홍보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분양자 입장에서는 장기 체류와 실거주의 차이가 모호하다"면서 "생숙이 문제 되기 전까지 정부도 '장기 거주는 불법'이라고 명확히 규제하지 않아 분양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문제는 집값이 폭등한 문재인 정부 때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수도권 집값은 치솟고 각종 규제로 내 집 마련이 힘들어지자 실수요자들은 규제가 덜한 생숙으로 눈을 돌렸다. 건설사들도 '법의 미비'를 틈타 경기도 수원시·용인시·화성시·평택시, 인천 송도 등에서 분양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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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숙이 주거용으로 전용되는 사례가 급증하자 2021년 정부는 분양공고에 숙박시설이라고 표기하도록 했다. 또 지자체에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면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미 생숙을 2021년 10월 14일 이전에 주거용으로 분양받은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도록 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21년 10월 14일 이전 전국에 공급된 생숙은 총 9만4246실에 달한다. 하지만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에 성공한 생숙은 찾기 힘들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약 1000호실이 용도변경한 것으로 안다. 건물 전체가 한 곳보다는 일부 호실만 용도변경하는 곳이 더러 있다"고 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여러 명이 구분등기로 분양받은 생숙 중에서는 용도변경된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용도변경 조건을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항이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분양자 100%(준공 건물은 소유자 80%)가 용도변경에 동의해야 하고, 광역시·도에서 토지 용도를 규정하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주차장 면적을 더 확보해야 하고 복도 폭도 넓어야 한다. 통신설비도 갖춰야 하며 소방·배연시설 등 각종 안전기준도 오피스텔이 더 엄격하다.

수원 A생숙의 경우 복도 폭이 오피스텔 기준에 미달되고, 통신실을 미확보했다는 이유로 용도변경을 추진하다가 포기했다. 송도의 한 생숙은 주차장 요건과 동의율 100%를 갖추지 못해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하지 못 했다. 안양 평촌 푸르지오 센트럴파크는 지자체가 주차장 규정을 완화하고, 지구단위계획도 변경해주려고 했지만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이 안 되고 있다. 통신실 면적을 오피스텔 기준에 맞게 확보해야 하고 분양자들에게 100%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모든 건축법에 적합해야 하는데 일부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용도변경이 어렵다"면서 "도와주고 싶어도 법이 이래서 도와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동의율 100%는 힘들지만 건물 용도가 변경되는 만큼 소수 소유자의 의견을 배제할 수 없다"며 "통신실 확보 문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담당이어서 여러 부처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당장 10월 15일부터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면 지자체는 매년 공시가의 10%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만약 공시가 10억원짜리 생숙이라면 1억원씩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책이 도입되면서 수요자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 감독을 했어야 하는데, 사실상 방치하다가 이렇게 문제가 커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 원장은 "정부는 국민들에게 제도를 잘 알리고, 혹시 잘 모르고 선택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는 만큼 이 문제가 연착륙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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