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 여교사 극단선택 파장
생전 일기장에 “업무 스트레스” 호소
교사들 “악성민원 대처 방법 없다”
올해 23세인 새내기 여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에 20일 오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학교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렸고, 일대에는 ‘동료 교사’ 리본 등이 달린 화환 수백 개가 놓였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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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여교사 A 씨(23)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해당 교사가 생전에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나오며 ‘교권 침해’(교육활동 침해) 의혹이 제기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일 “(교권 침해)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의 다른 초교에서 6학년 남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교사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교육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학부모 악성 민원 탓”… 학교는 의혹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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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해당 초교와 경찰 등에 따르면 이 학교 1학년 담임교사였던 A 씨는 이틀 전(18일)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정확한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A 씨의 일기장에는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지난해 3월 임용된 새내기 교사였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동료 교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며 “지난주에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었고 피해 학부모가 교무실에 와 고인에게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는 성명을 냈다. 또 “A 교사가 ‘학부모가 휴대전화 번호를 입수해 수십 통 전화해 소름 끼친다. 학부모들 민원으로 힘들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강남 지역 맘카페에서도 ‘해당 교사가 맡은 반에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있었다’는 글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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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권 침해와 학부모 악성 민원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A 씨의 유족은 “젊은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며 “새내기 교사에게 초1 담임을 줬다는 것 자체가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해당 초교 교장은 입장문을 내고 “해당 학급에서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고, 1학년 담임도 본인이 희망했다”고 주장했다. A 씨가 3선 국회의원을 부모로 둔 학부모에게 시달렸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교장은 “거론되는 정치인의 가족은 해당 학급에 없다”고 밝혔다. 해당자로 지목된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학교에 다니는 손자손녀가 없다”고 해명했다.
● 교문에 추모 화환, 국화꽃… 애도 이어져
교사들 항의… 곤혹스러운 교육 차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지만 조문하러 온 교사들의 진입을 막는 학교 측 조치로 헌화 뒤 되돌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사들은 차관 등 교육당국에 항의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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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초교 교문 앞에는 20일 교사, 학부모, 시민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전국에서 보내온 추모 화환 수백 개가 놓였고 벽에는 추모 메시지가 붙었다. 교사 유모 씨(31)는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 같아 안타까웠다”며 울먹였다. 다른 초교 교사 조모 씨(29)는 “학부모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지켜주는 제도가 없어 힘들어하는 교사가 많다”고 전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오후 해당 학교를 찾았다가 교사들 항의를 받았다. 장 차관은 “학생 인권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교사들이 위축된다. 교권을 보호할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의 지시에 따라 21∼23일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A 씨의 추모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부 학부모는 추모 분위기를 불편해했다. 온라인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한 초교 교사가 카카오톡 프로필을 추모 사진으로 바꿨더니 학부모가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 교사들, 민원 스트레스로 정신과 찾기도
경찰은 A 씨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정황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 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초6 학생에게 폭행당한 교사의 남편에 따르면,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교사에게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선생님이 차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달 인천의 한 초교에서도 특수학급을 맡은 교사가 여학생에게 머리카락을 뜯기고 의자에서 넘어졌다. 이 교사는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학생이 선생님을 싫어해서 한 행동”이라며 교사를 탓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520건 중 학부모에 의한 피해는 46%(241건)로 가장 많았다. 한 초교 교사는 친구들과 자주 싸우는 학생의 학부모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자 학부모는 “아무 잘못도 없는 애를 미워한다”며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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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보호 장치 없어… “공교육 붕괴”
교육계에서는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려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교권 침해 가해자가 학생인 경우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퇴학 등으로 처분 종류가 규정돼 있지만 학부모는 관련 내용이 없다. 결국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려도 사과를 권고하는 선에서 그치는 일이 많다.
교장이나 교감이 피해 교사 편에 서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따라 교권 침해 발생 시 교장은 피해 교사에게 특별휴가나 병가를 허용하고,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가 ‘학교가 문제를 은폐한다’며 교육청이나 국민신문고에까지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많아 학교장도 쉽사리 교사를 돕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양천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학부모 민원에 의한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는 교사들이 정말 많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알지만 무조건 교사 탓을 하는 부모들 때문에 학생지도에 몸을 사리게 된다. 결국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지적한다. 한 교사는 “수업 중에 돌아다니는 학생에게 ‘자리에 앉아’란 말 외엔 할 수가 없다. 잘못했다가는 신고당한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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