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시기, 수량 감안 시 폐기액 8000억 원 넘어
정부 "예측 불가능했던 상황... 해외도 마찬가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2가 백신 추가 접종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속속 도입된 2가 백신은 오미크론 하위 변이 BA.4와 BA.5에 항원을 발현한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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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때 확보한 백신 가운데 유통기한 만료 등으로 폐기된 분량이 1조 원어치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집행 예산에서 추정된 백신 단가에 당국이 밝힌 폐기량을 곱한 수치다. 이 금액은 계속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재유행 우려를 키우고 있는 최근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백신으로 예방이 어려워 남은 재고 물량도 폐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1년 4조5000억 원으로 1억1750만 회분 도입
코로나19 백신 도입 예산. 2021년만 따지면 4조5,161억 원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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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에 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많이 들여온 해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처음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했던 2021년이다. 이때 화이자(6,749만 회분)와 모더나(2,598만 회분)의 mRNA 백신을 비롯해 총 1억1,891만 회분이 도입됐다.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 '코백스(COVAX)'를 통해 구매한 백신과 미국이 무상 공여한 얀센 백신이 포함된 물량이다.
그해 질병청이 백신 도입에 투입한 예산은 4조5,161억 원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조1,909억 원이 4분기에 집행됐다. 무상이었던 얀센 백신(141만 회분)을 제외하면 예산이 들어간 백신은 1억1,750만 회분이다.
제조사별 단가에 차이가 있는 점을 감안해도 투입된 예산을 도입 백신 규모로 나누면 1회분당 약 3만8,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 외신 등을 통해 모더나 백신 가격은 1회분에 4만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백신 구입 단가를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남은 백신 3463만 회분... 폐기 금액 더 늘어날 듯
3월 21일 서울 용산구의 한 내과의원에서 동절기 추가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진행된 추가접종에는 2가 백신이 투입됐지만 접종률이 목표치인 60%에 못 미쳐 소진되지 않은 백신도 많이 남았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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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청에서 받은 '코로나19 백신 도입 및 폐기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폐기된 백신은 2,186만 회분이다. 유통기한을 감안하면 먼저 들어온 2021년 백신이 먼저 폐기되는 게 합리적이라 당시 단가를 곱하면 폐기한 백신은 금액으로 8,4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청은 정확한 액수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비밀유지 협약 때문에 밝힐 수 없고, 도입 예산은 선금과 잔금으로 나눠지고 유효기간 연장 협의 등으로 인해 변동 사항이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이 최근 공개한 잔여 백신은 약 3,463만 회분이다. 이 중 내달 말까지 추가로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1,100만 회분 정도가 더 폐기될 운명이다. 이렇게 되면 버려지는 백신을 구매하는 데 쓴 예산이 1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남은 백신도 향후 사용될 가능성이 극히 적다. 가장 물량이 많은 개량 백신(2가 백신)은 오미크론 하위 변이 BA.4와 BA.5에 항원을 발현하는데, 현재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XBB 계열이다. 같은 오미크론 변이이긴 하지만 기존 백신은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질병청 역시 초겨울쯤 XBB 변이 기반 새 백신으로 전 국민 무료 접종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다만 지난 동절기 추가접종 때 60세 이상 접종률이 34.5%로 저조했고 치명률이 최근 0.03%까지 떨어지는 등 코로나에 대한 위험도가 낮아져 얼마나 맞을지는 미지수다.
팬데믹 불확실성 비용이긴 한데... "폐기가 너무 많긴 하다"
화이자의 BA.4/5 기반 2가 백신은 약 1,393만 회분이 사용되지 않고 남은 상태다. 질병관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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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은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전 세계적 유행(팬데믹)으로 백신 확보가 당시 모든 국가의 급선무였던 점이 감안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mRNA 백신 자체도 처음이었고 방역조치 변화로 접종률이 낮아지는 등 정확한 수급 예측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일본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도 유효기간이 지난 백신을 폐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감염병 전문가들도 당시에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판단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물량 확보조차 쉽지 않았던 때라 뭐라고 할 수가 없다"며 "누구라도 정확히 (수요를) 예측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그동안 백신 종류를 바꾸고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며 "팬데믹의 불확실성에 대한 비용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폐기량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백신은 부족한 것보다 남아서 폐기하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수십만, 수백만 회분도 아니고 수천만 회분이라면 조금 문제이긴 하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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