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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철근빠진 아파트] 2년 전엔 땅 투기, 이번엔 대규모 ‘철근누락’... 공기업 LH, 커지는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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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검단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원인으로 꼽히는 ‘철근 누락’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에서도 무더기로 확인되면서 LH의 ‘부실 관리·감독’ 문제가 본격 도마에 올랐다. 특히 ‘주택 부실시공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2년전 임직원 땅 투기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LH가 이번 사태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비즈

이한준 LH 사장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는 모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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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31일)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LH가 2017년 이후 무량판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 가운데 15개 단지에서 기둥 주변 보강철근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15곳 가운데 5곳은 시공(단순 누락, 다른 층 도면으로 배근)문제, 10곳은 설계상 문제(도면표현 누락, 구조계산 오류)로 분석됐다. 시공 전 설계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류를 잡아내는 감리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공공주택은 LH가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를 선정하고 승인하는 구조로 돼 있다. 건설공사진흥법 제39조와 동법 시행령 55조 1항(예외규정)을 근거로 공사 관리감독 업무를 자체 수행할 수 있다. 즉 시행사도 LH, 브랜드도 LH, 설계도 LH가 맡는 셈이다.

설계는 공모를 통해 공개경쟁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한다. 감리는 가격심사와 기술심사를 종합해서 선정하는데, 기술심사는 계량심사와 비계량 심사로 나눠진다. 이처럼 선정 및 심사 방식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만 그럼에도 건설업계에선 부정과 비위가 발생할 소지가 상존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설계와 시공단계에서 오류를 잡아내는 것이 감리인데, 제대로 하려면 발주처와 시공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물론 LH 입장에서 보면 경험도 없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곳에 어떻게 맡기겠냐. 정성평가 영역이 들어가다 보니 한 번 검증되면 여러 현장에 재차 쓰이는 경향이 강하다”면서도 “그러다보니 감리가 LH 입맛대로 된다. 지금은 좀 바뀌었다지만 감리는 여전히 시행사 눈치를 절대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LH가 공공주택 발주에만 급급하고 설계 및 감리 등 관리 영역에서 소홀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건설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관계자는 “LH가 설계·감리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하는데, 마치 선수인데 심판처럼 구는 느낌”이라며 “정부 당국에서 대대적으로 LH의 시공, 설계, 감리 선정 절차와 권한에 대해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한준 LH사장은 전날 “그간 LH는 주택 발주만 했지 설계·감리 등 관리에 관심이 부족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실제 LH의 ‘셀프감리’와 부실시공 관리·감독 소홀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단골메뉴로 등장해왔다. 지난해 9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공사 현장 감리 인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LH가 자체감리하고 있는 공사현장(단지·주택) 166곳 가운데 142곳(85.5%)이 법정 감리 인력을 충족하지 못했다. 심지어 3번이나 부실시공으로 적발됐는데도 감리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공사현장도 있었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작년 11월 이 사장 취임 당시 “LH를 신뢰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달라”며 자체 혁신방안을 주문한 바 있다. 공공임대 아파트 품질을 높이겠다는 내용의 자체혁신안 내놓은지 불과 7개월도 안된 상황이다.

일각에선 부실감리 업체에 대해서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강력한 패널티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는 국토부에서 벌점제도를 운영해 입찰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과거 대우관련 분식회계로 회계기업의 영업이 정지됐던 것처럼 감리를 한 번 부실하게 해서 잘못했을 경우에는 아예 존속이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당근과 채찍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사현장에서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되, 부정 행위시 패널티를 확실하게 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철근누락은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비숙련 인력을 쓰고 공기를 무리하게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런 비용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쓰일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패널티만 가하면 결국 편법만 찾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에는 확실한 채찍을 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호 기자(best2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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