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정당한 보상 저작권 개정안 통과 재차 촉구
17일 문체위 저작권법 개정안 소위 심사
"승자 독식의 희망고문…창작 생태계 유지 어려워"
지난 2월 국회에서 영화감독들이 참석한 채 열린 ‘영상저작자의 정당한 보상!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회’ 행사 후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김보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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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수많은 동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질 않습니다. 승자 독식의 희망고문으로는 창작 생태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국내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 창작자 단체들이 창작자들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냈다.
이 저작권법 개정안은 영상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가 활용될 때마다 음원, TV 재방료처럼 최종 플랫폼으로부터 저작권료를 일정 부분 보상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창작자들의 저작권료를 공정히 관리하고 분배할 수 있는 신탁관리 단체를 구성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법안은 지난해 여름 발의됐지만, 1년이 다 되도록 개정안 심사가 보류되는 등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개정안 내용상 창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할 주체인 플랫폼 측과 법안 내용을 둘러싸고 극명히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창작자들은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더불어 플랫폼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세제 혜택 및 지원책을 마련해줄 것도 함께 요청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SGK(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17개 단체는 14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영상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 조속 통과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강대규 감독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DGK 측 발언 대표로 ‘도희야’,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과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지원준 (사)한국독립PD협회 정책위원장, 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표,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사)오픈넷 오경미 연구원, 정승구 감독 등이 참석했다.
국내 저작권법 제100조에 따르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 창작자들은 저작권을 제작자에게 양도한다. 저작권을 제작자에게 맡기기 때문에 저작자가 저작권을 누릴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창작단체들은 이에 대해 “법으로 저작권 양도를 추정하는 저작물은 오직 영상물 뿐”이라며 “우린 끊임없이 이 문제의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언제나 ‘산업부터 살리고 보자’, ‘파이가 커지면 나눠줄 게 생길 것’이란 논리에 밀려 희생을 강요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2021년 황동혁 게임의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적 붐을 일으켰고, 이 작품 하나로 넷플릭스가 1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벌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 창작자들의 저작권료에 대한 인식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1조원이나 벌었지만, 정작 고통을 견디며 작품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아 그에 따른 추가적 수익 분배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을 대표하는 천만영화 감독들과 200명이 넘는 현역 감독들이 국회에 모여 ‘영상창작자들도 출판 작가나 음악 창작자들처럼 작품이 이용될 때마다 작은 비율의 수익이라도 분배받을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고 입을 모았다. 그 후 작년 여름 유정주 의원,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저작권을 양도한 영상창작자가 영상물의 최종공급자로부터 수익에 비례해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법안과 관련한 각계 의견수렴, 공청회, 국회 토론회를 통해 수차례 법안의 시행 가능성과 보완점 등을 수차례 논의해왔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상임위에서 법안 심사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6월 29일 안건에 올려 심사할 예정이었으나 논의할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창작자들은 “제정법도 아닌 개정법에 대해 이렇게까지 다양한 논의 절차를 거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문체위에서 한 차례도 이 법안에 대한 심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저작권법이 해외에서 보장하는 한국 창작자들의 저작권료를 국내로 가져오는 것을 막고 있는데(해외에서 주는 저작권료를 받아줄 국내 저작권료 신탁 관리 단체가 없기 때문)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국내 플랫폼들이 살아남아야 하며, 글로벌 플랫폼만이 한국 시장을 독점 지배하는 상황을 자신들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내 플랫폼이야말로 두터운 창작자 풀 없인 글로벌 플랫폼에 대항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국제적인 시각에서 콘텐츠 산업을 바라봐야 할 때”라며 “이 순간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콘텐츠 생산국들은 초국적 플랫폼의 지배력에 대항해 창작자를 보호하고 자국의 문화적 기반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이미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럽에선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선 창작자들의 파업 및 쟁의권을 보장하고 있다. 남미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저작권법 개정을 시작, 최근 글로벌 플랫폼들과 협상을 마치고 창작자들의 보상금 지급에 돌입했다. 지난해에는 유럽 및 남미의 저작권 단체가 우리나라의 저작권법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창작자들은 “연간 8700억 원 규모 국제 저작권료 시장엔 진입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국부가 실시간으로 유실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서 K콘텐츠 진흥을 위해 투자 유치, 콘텐츠 제작 세제 혜택 강화 등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이참에 플랫폼에 대한 세제 혜택 및 지원책도 함께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송국 등 플랫폼들이 제도를 수용할 수 있게 통 큰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첨언했다.
아울러 “각당 지도부에 간청한다. 창작자들을 직접 만나달라”며 “저작권법 개정안은 창작자 권리 보호의 최저선이다. 반드시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은 이날 현장에서 발언을 통해 힘을 보탰다. 정주리 감독은 “이 제도는 우리에게 영화가 어딘가에서 상영되는 한 아직 나와 연관돼 있고, 여전히 감독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확신과 (창작자에게)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로부터 자신의 영화 ‘도희야’로 처음 저작권료를 지급받았을 때의 경험과 심정을 밝히며 “이 저작권료 지급을 계기로 다시 영화와 내가 연결됐다. 아무리 적은 금액일지라도 1차적으로 이 작품의 창작자로서 감독을 인정해준다는 사실에 다시 자긍심을 느꼈다”고도 털어놨다.
김병인 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유럽의 창작자들은 저작권법을 통해, 미국의 창작자들은 노조를 통해 ‘정당하고 비례적인 보상’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유럽과 미국의 창작 생태계는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이라며 “왜 한국의 창작자들만 아무 대책없이 방치되어야 하나, 부디 세계를 누비는 K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용단을 내려주실길 당부드린다”고 촉구했다.
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표 역시 “OTT 산업시대 영화영상 강국으로 가는 마지막 지름길이 ‘창작자 권리보호’”라며 “음반 산업도 음악 저작권자들로 인해 축소된 게 아니라 글로벌 환경에 맞는 창작으로 몇 단계 산업계를 점프시켰다. 한국영화영상 산업이 세계로 질주할 수 있는 길을 터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는 17일 이 저작권법 개정안의 소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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