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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정치계 막말과 단식

이재명, 두 번째 무기한 단식 돌입…사법리스크 돌파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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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민주주의 파괴"

성남시장 시절 11일간 단식 농성

YS·DJ 등 민주화 투쟁 위한 단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훼손을 비판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성남시장이던 2016년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철회를 요구하며 열흘간 단식농성을 벌인데 이은 두번째 단식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이 대표는 대장동 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등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인한 사법리스크에 시달린 만큼 이번 단식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사즉생’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오늘은 무도한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첫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생파괴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한 정부의 반대입장 천명 및 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개각 단행을 촉구했다.
성남시장 시절 11일간 단식…김종인 비대위원장 권유로 중단
아시아경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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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6월7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1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다.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철회를 요구하며 ‘근본적 대책’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고,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광화문 현장을 찾아 만류하면서 중단됐다. 그는 이후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수액 투여 등 치료를 받았다.

이 대표는 같은해 10월 이정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야3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에 반발해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정현 대표 단식과 이재명 성남시장 단식의 다른 점’이라는 제목의 글은 올리고 “단식은 약자들의 최후 저항수단”이라며 “대통령의 지방자치 탄압에 맞선 성남시장의 단식은 저항이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하는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은 그래서 저항이 아닌 땡깡이나 협박”이라고 적혔다.

실제 정치권에선 대체로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 대표들이 단식에 나섰다. 권력 속성상 대체로 힘을 가진 집권 여당이 아닌 야당 대표들의 정치 행위였다. 실제 정치권의 단식 투쟁이 본격화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절박한 투쟁이었다.

YS, 전두환 정권 독재 항거부터 후쿠시마 반대 단식까지
아시아경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6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저지'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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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대표 시절이던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곡기를 끊었다.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연금 중이던 그는 학생·종교인·지식인의 석방과 복학·복직, 언론 통폐합 백지화 등을 요구했다. 당시 그는 23일간 단식을 중단하며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중단한다"고 발언을 남겼다.

1990년에는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사찰 중단과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그의 요구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일부 실현됐고, 1995년에는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며 목적을 달성했다.

2000년대 들어선 정치적 선명성을 드러내거나 특정 정책을 위한 단식이 잇따랐다. 2000년대 초반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쌀 협상 비준동의안 반대 29일간 단식했고,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해 민주노동당 문성현 전 대표가 26일간 곡기를 끊었다. 2011년 노회찬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0일간 단식했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정치인 단식이었다.

2018년 12월에는 당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합의하면서 9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2019년 11월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청와대 앞에서 8일간 농성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황 대표는 가족과 의사, 당의 만류로 단식을 마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던 2014년 8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흘간 단식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하자 함께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이정미 대표가 지난 7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고자 5년 만에 재차 단식에 돌입해 20일 만에 중단했고,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며 15일간 단식하다 이재명 대표의 만류로 중단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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