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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년 이어온 요리법이라니 … 놀라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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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일 서울 북한산 진관사에서 회주 계호 스님(왼쪽 둘째)이 정현희 정진기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의 초청으로 방문한 인사들에게 사찰음식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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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북한산 천년고찰 진관사. 3일 입재부터 49일간 진행하는 불교 최대 천도 의식 '국행수륙대재'를 앞두고 분주한 가운데 낯선 외국인 방문객 20여 명을 맞았다. 영국과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등에서 찾아온 예술·건축계 유명 인사들로, 이들은 서울 도심 산속 계곡을 앞에 둔 사찰 풍경에 감탄했다.

이곳 주지 법해 스님은 먼 곳에서 온 방문객들을 맞아 붉은 가사를 걸치고 수륙대재 의식 중 일부를 선보였다. 무려 625년이나 이어온 진관사의 국행수륙대재는 온 천지와 수륙의 모든 존재들을 초청해 자비와 평등으로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어 모두를 평안하게 하는 중생구제의 불교사상을 구현하는 행사다. 특히 올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지 10년째라 더욱 뜻깊다.

한국 사찰문화에 매료된 세계 미술·건축계 인사들은 정현희 정진기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의 초청으로 진관사에 왔다. 이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이어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미술품 판매 장터)로 부상한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잇따라 열리면서 방한한 손님들이다.

진관사 함월당에서 정좌한 법해 스님이 참석자 이름을 목탁 소리에 맞춰 하나하나 읊으니 국적과 상관없이 본인 이름을 알아듣고 감동했다. 세계 전쟁의 종결과 전염병 소멸, 인류 평화와 장수, 사랑, 축복 기원과 함께 마무리됐다. 이어서 스님 네 분의 바라무가 펼쳐졌다. 스님들이 둥글넓적하고 배가 불룩한 놋쇠 악기 바라를 들고 천천히 위에서 치고, 아래에서 치다가 점점 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울려 퍼져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선우 스님은 "바라무는 지옥과 하늘을 여는 소리로, 이를 통해 나쁜 카르마(업보)를 씻어버리게 한다. 모두 복을 받고 행운을 이어가길 바란다"면서 주지 스님의 기도를 통역했다.

참석자들의 감로수 축원도 이어졌다. 법해 스님 앞에 고개를 푹 숙여 머리와 등 순서로 감로수를 받는, 서양 세례 같은 장면에 경내는 숙연해졌다.

의식이 끝나자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카르스텐 니콜라이는 마치 마음속에 담으려는 듯 법당 구석구석을 찬찬히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다. '알바 노토'란 예명으로 알려진 그는 전자 음악 기반 미디어아트로 사카모토 류이치 등 일본 음악가들과 협업해 아시아 문화가 낯설지 않다. 니콜라이는 "이 공간 구석구석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강렬한 영감을 얻어간다"고 했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감으로 유명한 영국 디자이너 잉카 일로리도 "내 작업은 나이지리아 출신 부모님의 전통 직물 등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는데, 오늘 이곳 사찰의 알록달록 장식 등에서도 특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려 오백나한재부터 시작해 조선 수륙재로 이어온 제례음식이 진관사 사찰음식 전통으로 남았다. 앞서 사찰음식 대가인 회주 계호 스님은 이들을 맞이해 "병이 났을 때 음식을 먹어 먼저 치료하고 다음에 약으로 한다"며 "문화와 음식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라고 설명했다. 계호 스님은 사찰음식의 기본으로 파, 마늘, 부추, 양파, 달래 등 5가지 자극적인 양념을 피하는 것(5신채)을 설명하고, 진관사 음식은 625년간 수륙재 전통과 함께 의례음식이 이어져 요리법이 많이 바뀌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넣고 맷돌을 천천히 돌리는 장면을 시연해본 참가자들은 신기해했다. 외국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영어 'Happy(행복)'로 장식한 두부찜도 준비해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었다.

점심시간에 스님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발우공양을 경험한 이들은 북한산 도토리로 만든 묵과 두부구이, 감자부각 등 순하면서도 탁월한 맛에 탄복했다. 닉 버클리 우드 소더비 아시아 세일즈 디렉터는 "한국 하면 현대예술과 첨단기술 등을 떠올리지만 깊은 역사와 전통을 알게 되면 더욱 감탄하게 된다"며 "채소만으로 완성된 사찰음식의 풍부한 향미는 정말 환상적이고, 널리 소개하고픈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말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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